오르테가의 명저 '대중의 반역'과 만남

by 정유철

스페인 철학자 호세 오르테가 이 가세트(1883~1955)의 《대중의 반역》이라는 책을 내가 처음 알게 된 것은 고등학교 때 수업 시간이다. 대중사회를 배울 때 이 책이 언급되었다. ‘대중사회의 도래를 예언한 책’이라고 기억한다. 그 뒤 이 책을 읽어보지 않았고, 책 이름도 점차 기억에서 희미해졌다.

불현듯 2020년 여름 《대중의 반역》을 읽었다. 일본에서 새로 번역해 펴낸 《대중의 반역》이 고전서로는 이례적으로 1만부 넘게 팔렸다는 기사를 본 것이 계기였다. 신종코로나증후군19로 세계가 고통스럽게 보낼 당시, 프랑스 소설가 알베르 카뮈(1913~1960)의 소설 《페스트》가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감염병이 창궐하여 국경이 봉쇄되자 그와 유사한 상황에 처해 있는 도시를 다룬 이 소설이 다시 인기를 끌었던 것이다. 그 무렵 일본 독자들도 《페스트》를 다시 찾았고 베스트셀러가 되어 이 같은 사실을 일본 언론들은 연일 보도하였다. 그런데 《대중의 반역》은 왜?


《대중의 반역》을 새로 번역해 펴낸 이는 스페인 사상연구가 사사키 다카시. 사사키는 일본 조지대학에서 스페인어와 철학을 공부하고 스페인 철학자 오르테가와 미겔 데 우나무노를 연구하면서 대학교수로 30여 년간 교단에서 섰다. 그 후 고향인 후쿠시마현 미나미소마시(南相馬市)로 돌아왔다. 2011년 동일본대지진 때 치매를 앓는 아내와 함께 대피할 수 없다고 판단하고 후쿠시마 제1원전으로부터 25킬로미터 떨어진 자택에 그대로 머물며 블로그 ‘모노디아로소스’(독대화)에 현지 상황에 관해 매일 글을 올려 화제가 되었다. 이 원고를 모아 책을 펴냈다. 한국에서는《원전의 재앙 속에서 살다》(형진의 옮김, 사계절, 2013)라는 제목으로 번역 출판되었다.


사사키가 《대중의 반역》의 번역을 본격적으로 시작한 것은 2006년. 이듬해 번역을 완료했으나 수정작업을 계속하였다. 2018년 12월 간암 치료를 위해 입원하기 직전에 완성한 원고를 가족에게 맡기고 5일 후에 79세로 사망했다. 사사키는 결국 책이 나온 것을 보지 못했다.《대중의 반역》을 새로 번역하면서 사사키는 “대중을 비판하는 엘리트”라는 기존의 이미지와는 다른 오르테가의 상을 제시하려 했다.

이런 내용을 접하고 은퇴한 대학교수가 10여년간 붙들고 번역하고 수정을 거듭한 《대중의 반역》은 도대체 어떤 책일까, 사사키는 어떤 점에 이끌렸는지, 몹시 궁금했다. 그래서 국내 번역서를 구입해 바로 읽었다.


《대중의 반역》은 어떤 책인가? 이 책을 번역한 황보영조는 ‘책을 옮기고 나서’에서 “20세기 대중사회의 본질을 파헤친 세기적인 저작”, “우리의 가슴을 뜨겁게 하는 책”, “우리의 삶에 용기와 희망을 불어넣어 주는 진지한 통찰력을 제공해주는, 드문 책 가운데 하나”라고 했다. 그리고 외국에서 평가도 소개했다. 미국의 저명한 잡지 《월간 대서양 Atantic Monthly》은 "루소의 《사회계약론》이 18세기를 대변하고, 칼 마르크스의 《자본론》이 19세기를 대변한다면, 오르테가 이 가세트의 《대중의 반역》이 20세기를 대변할 것"이라고 평가했다. 그 정도로 이 책은 20세기 현대 대중사회의 본질을 문명사적으로 분석한 세기적인 저작이다라고 했다(황보영조 옮김, 《대중의 반역》, 역사비평사, 2005, 7쪽).


《대중의 반역》은 저자인 오르테가가 1929년부터 일간지《태양 EL Sol》에 기고했던 글을 모아, 그 이듬해인 1930년에 단행본으로 엮어 간행한 책이다. 이 책은 호세 오르테가 이 가세트를 프로이트와 니체, 앙리 베르그송, 미겔 데 우나무노, 베네데토 크로체, 폴 발레리, 장 폴 사르트르, 알베르 카뮈, 토마스 만, 하이데거, 버트란드 러셀 등 세계적인 서구 문명 해석자들의 반열에 오르게 했다는 소개도 덧붙였다.


그런데 이런 세기적 저작이 국내에서는 그다지 소개가 안 되어서 놀랐다. 아무래도 저자가 스페인 출신이라서 그럴지도 모른다. 검색하여 일본의 사정을 알아보니 오르테가저작집 8권이 1969~70년에 간행되었고 오르테가 생애와 사상에 관한 연구서도 꾸준히 나오고 있다. NHK 방송에서는 ‘명저의 100분’이라는 프로그램에서 《대중의 반역》을 2019년 2월의 명저로 선택하여 네 차례 소개하고 발표자였던 나카지마 타게시 교수는 발표 내용을 책으로 펴냈다. 이런 명저를 나는 이제 접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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