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중, 완전한 사회권력의 자리에 앉다

호세 오르테가 이 가세트 《대중의 반역》

by 정유철

이제 《대중의 반역》을 자세히 살펴보겠다. 호세 오르테가 이 가세트 지음, 황보영조 옮김, 《대중의 반역》(역사비평사, 2005) 1판 5쇄(2015)를 기본으로 하여 인용문의 쪽은 이 책의 쪽을 의미한다.


오르테가는 오늘날, 즉 1930년대 유럽에서 대중이 완전한 사회권력으로 등장함으로써 유럽이 최대의 위기에 처해 있다고 지적하는 것으로 《대중의 반역》을 시작한다. 이 책은 바로 위기에 처한 유럽을 구하기 위해 대중의 실체를 파악하고 “현실의 대중 지배에 숨겨진 적극적 의미를 파악하려는” 시도이다. 그런데 왜 대중이 사회권력을 완전히 장악한 것이 유럽의 국민, 국가, 문화에 가장 심각한 위기를 가져왔는가? 이 대중은 누구인가?


대중은 누구인가


“사회는 언제나 소수자와 대중이라는 두 요소로 구성된 역동적 통일체이다.”(19)

오르테가는 현대의 대중, 즉 완전한 사회권력자가 된 대중을 분석하기에 앞서 먼저 이전의 대중, 일반적인 의미의 대중과 소수자에 관해 고찰한다. 소수자는 특별한 자격을 갖춘 개인이거나 개인들의 집단이고, 대중은 그런 자격을 갖추지 못한 사람들의 집합이다. 소수자(minorias)라는 말이 여기서는 다수, 소수로 구분할 때 쓰는 소수라기보다는 영어의 리더(leaders), 프랑스어의 엘리트(elites)로 생각하면 이해하기 쉬울 것이다. 살바도르 데 마다리아가 이 로호(Salvador de Madariaga y Rojo, 1886~1978)는 저서 《영국인 프랑스인 스페인인(Englishmen, Frenchmen, Spaniards)》(1928)에서 “스페인어에서 minorias(소수자)로 표현되는 개념이 프랑스어의 엘리트(elites), 영어의 리더(leaders)가 말하는 의미에 해당한다”라고 하였다. 오르테가는 이 소수자를 ‘선택된 소수자’ ‘우수한 소수자’ ‘뛰어난 소수자’라고 표현한다.

대중과 우수한 소수자는 사회적 계층으로 나눈 것이 아니라 인간적인 계층으로 나누었기 때문에 사회적 계층으로 상하층의 서열과는 일치하지 않을 수 있다. 이전이라면 상층계급에는 소수자가 대부분이었을 것이지만, 오늘날에는 각 사회계급 안에 대중과 진정한 의미에서 선택된 소수자가 동시에 존재한다. 전형적인 ‘대중’으로 여겨지는 노동자 중에도 ‘고귀한 정신’ 즉 소수자를 요즘 심심찮게 발견할 수 있다. 오르테가의 소수자와 대중의 구분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이 두 부류를 자주 비교하여 설명하기 때문이다.


그럼 대중이 누구인지 살펴보자. 이미 말한 것처럼 대중은 특별한 자격을 갖추지 못한 사람들의 집합이다. 대중은 질적으로는 ‘평균인(el hombre medio)’으로 “공통의 자질과 사회적 무소속을 특징으로 하는 존재, 자신을 타인과 구별하지 않고 오히려 일반적 유형의 되풀이하는 사람”(19)이다. 이렇게 대중은 ‘심리적 의미’로 정의하기 때문에 개인들이 모여 대중의 형태로 출현하기를 기다릴 필요가 없다. 집단이 아닌, 한 사람이라도 대중이라고 부를 수가 있다. “대중이란 특정한 기준에 따라 자신에 대해 선악의 가치판단을 내리는 것이 아니라, 자신을 ‘다른 모든 사람들’과 동일시하면서 불편함보다는 편안함을 느끼는 사람들 모두”(20)이다. 그들은 자신에게 아무것도 부과하지 않으며 현재 있는 그대로 자신을 유지한다. 즉 “이들에게는 산다는 것이 매 순간 물결을 따라 표류하는 부표 같은 것이어서, 그들은 완전해지려는 노력을 전혀 기울이지 않는다.”(21) 이렇게 자질이 없는 대중은 자신에게 어떠한 것도 부과하지 않고 자기완성에의 노력도 하지 않는다고 오르테가는 본다.

그럼 대중은 장소적으로 어디에 존재하였는가? 그들은 이전에는 군중으로 존재하지 않았다. 소집단이나 개인별로 도처에 흩어져 따로 떨어져 제각각 생활을 영위했다. 개인이든 소집단이든 마을과 읍, 소도시와 대도시의 한 구역에서 각자 따로 자신의 장소를 점유하고 있었다. 존재했다고 해도 사회 무대의 뒤쪽에 있어서 눈에 띄지 않았다.

이러한 대중은 사회생활에서 어떤 역할을 하였는가? 대중은 원래 전문적인 것이어서 그런 재능이 없이는 제대로 수행할 수 없는 업무와 활동과 기능에는 참여하려고 하지 않았다. 이런 전문 활동에는 자질이 있거나 적어도 그런 자질이 있다고 자처하는 소수자가 종사했다. “만일 대중이 참여하려면 먼저 필요한 자질을 갖춰야 하고, 대중이기를 포기해야 한다는 인식이 있다. 대중은 사회의 건전한 역학관계 속에서 자신들이 담당해야 할 역할을 알았던 것이다.”(23)

그런데 대중이 이제는 군중을 이루어 사회의 주요한 장소를 차지했다. “문명이 만들어낸 장소와 시설을 차지한 군중”이다. 도시, 주택, 호텔, 기차, 찻집, 거리, 저명의사 진료실, 흥행물, 해변-사람들로 붐빈다. 그래서 자리(빈 장소)의 문제가 이제는 날마다 발생한다. 예전에는 소집단이나 소수자를 위해 마련되었던 비교적 세련된 인류 문화의 산물인 특별한 장소에서 군중을 보게 되었다. 이렇게 “문명이 만들어낸 장소와 시설을 차지한 군중”은 전에 없던 일이다.

이러한 현상을 두고 오르테가는 “대중이 대중이기를 포기하지 않은 채 소수자의 자리를 차지하려 한다는 새로운 사실을 시각적 언어로 우리에게 보여준다(23)”고 하였다. 이전에는 대중이 소수자의 역할을 하려면 자질을 갖추어야 하고 대중이기를 포기하고 소수자가 되어야 했다. 그러한 대중이 많지 않았기 때문에 문명이 만들어낸 장소와 시설에서 ‘밀집’ 현상이 일어나지 않았다. 그러나 현대의 대중은 대중인 채로 자격을 갖추지 않고 소수자를 대신하려고 한다. 그래서 문명이 만들어낸 장소와 시설을 군중이 차지하였다.

오르테가는 소수자의 활동 영역을 떠맡으려는 대중의 결정이 유희 분야에 국한되지 않고 모든 영역, 보편적으로 나타난다는 점을 우려한다. 그 예로 먼저 정치 분야의 과잉민주주의를 고찰한다.


대중의 정치 지배 : 과잉민주주의


오르테가는 최근의 정치 혁신이 사실상 대중의 정치 지배, 정치지배의 대중화를 의미한다고 지적하였다. 대중의 정치 지배를 그는 과잉민주주의(hiperdemocracia)라고 불렀다.

과거의 민주주의는 자유민주주의와 법에 대한 열정으로 넘쳤다. 그 원리를 실현하기 위해 개인은 까다로운 규율을 자신에게 강제로 부과했으며, 소수자는 자유주의의 원리와 법률의 보호 아래 생활하고 활동할 수 있었다. 민주주의와 법-그리고 그에 따른 공동생활-은 동의어였다.

자유민주주의에서 대중은 정치를 전문가에게 맡겼다. 당시 대중은 정치가라는 소수자에게 여러 가지 결점과 결함이 있어도 정치문제에 관해서는 자신들보다는 더 많이 알고 있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이제 대중은 정치가에게 정치를 맡기지 않는다. “대중은 법을 따르지 않고 직접 행동을 통해 물리적 압력을 행사하면서 자신들의 열망과 욕망을 실현한다.”(24) 대중은 카페에서 논의하여 내린 결론을 사회에 강요하고, 그것에 법의 힘을 실어줄 권리가 자신들에게 있다고 생각한다. 법은 의회에서 발의하고 논의하여 제정하는 것인데 현대의 대중은 이를 무시한다. 커피하우스는 혁명을 잉태한 공간이기도 하다. 파리의 커피하우스는 볼테르와 장 자크 루소 등 계몽주의 사상가들의 아지트가 되었다. 귀족들의 폐쇄적인 살롱 문화와 달리, 누구나 찾아와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커피하우스는 평등과 공화주의를 상징하는 공간이었다. 커피하우스에서 민중을 만나고 치열하게 토론하며 개혁 의식을 키워간 부르주아 계급의 성장은 프랑스혁명으로 이어졌다.(구정은, 장은교, 남지원 지음 《카페에서 읽는 세계사》, 인물과 사상사, 2016, 14~15쪽) 이런 곳을 차지한 대중은 평등과 공화주의가 아니라 자신의 열망과 욕망을 논의하였던 것이다. 이 시대만큼 군중이 직접적으로 지배하는 시대는 역사상 유례가 없다. 그래서 오르테가는 이를 과잉민주주의라 부른다.


지적 분야의 대중화


지적 분야에서도 대중 지배가 일어나고 있다. 오르테가에 따르면 오늘날 “본질상 자질을 요구하고 있고 또 그것을 전제로 하는 지적인 생활에서조차, 자질이 없을 뿐만 아니라 자질을 평가할 수도 없고, 정신구조상 부적격인 가짜 지식인들이 점차 승리를 거두고 있다.”(22)

게다가 저자가 오랫동안 연구해 온 주제에 글을 써도 일반 독자는 그 주제에 전혀 관심이 없다. 그들이 그것을 읽는 이유는 뭔가를 배우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들의 머릿속에 들어 있는 평범한 사실들과 저자의 의견이 일치하지 않을 경우 저자를 비판하기 위해서다.

이렇게 오늘날 “평균인은 자신이 평범하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당차게 평범함에 관한 권리를 주장하면서 그것을 어디서든 실현시키려 한다.” 이것이 우리 시대의 특징이라고 오르테가는 말한다.

여기에 그치지 않고 “대중은 모든 차이, 즉 우수하거나 개성이 있거나, 자질이 있거나, 선택되는 모든 것을 억누른다. 모든 사람과 같지 않은 사람이나, 모든 사람과 생각이 다른 사람은 따돌림을 당할 위험이 있다.”(25)

‘모든 사람’은 본래 대중과 전문적인 소수자의 복합체였으나 이제 ‘모든 사람’은 대중일 뿐이다. 여기서 따돌림당할 위험이 있는 사람은 소수자이다. 그는 특별한 자질이 있거나 우수하거나 선택된 사람이기 때문이다.

소수자


이 소수자가 어떠한 사람인지 보자. 앞에서 언급한 것처럼 소수자는 특별한 자격을 갖춘 개인이거나 개인들의 집합이다. “선택된 소수자는 어떤 사람들인가? 그들은 다른 사람보다 자신이 뛰어났다고 생각하는 오만한 사람이 아니다. 자신의 능력으로 달성할 수 없을지라도 다른 사람에게 보다는 자신에게 더 많은 것을 끊임없이 요구하고, 더 어려운 것을 하도록 요구한다.”(21) 선택된 소수자는 자신에게 많은 것을 요구하면서 스스로 어려움과 부담을 누적하는 사람들이다. 소수자는 전문적인 재능이 없이는 제대로 수행할 수 없는 업무와 활동, 기능 등 전문 활동에 종사했다. 이런 소수자가 대중에 의해 따돌림당하여 배척되는 사회가 된 것이다.

지금까지 살펴본 것처럼 반역한 대중이 완전한 사회권력이 된 유럽은 최대의 위기에 처해 있음을 알 수 있다. 특별한 자격이 없고, 아무런 노력을 하지 않는 대중, 법을 따르지 않고 직접 행동을 통해 물리적 압력을 행사하면서 자신들의 열망과 욕망을 실현하는 대중, 모든 차이, 즉 우수하거나 개성이 있거나, 자질이 있거나, 선택되는 모든 것을 억누르는 대중, 모든 사람과 같지 않은 사람이나, 모든 사람과 생각이 다른 사람은 따돌리는 대중. 모든 사람이 이런 대중인 사회라면 누가 위기에 처해 있지 않다고 하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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