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중은 어떻게 소수자의 역할을 하게 됐나

오르테가 이 가세트 "대중의 반역"

by 정유철

대중 지배는 역사상 언제 있었는가? 오르테가는 현대 문명의 발전 과정에서는 이와 유사한 현상은 나타난 적이 없고 고대 세계로 가야 볼 수 있다며 그 예를 로마제국에서 찾는다. 그에 따르면 로마제국의 역사 또한 봉기의 역사이자 대중 지배의 역사이다. 대중이 소수 지배자를 흡수·제거하고 그들의 자리를 대신 차지했다. 또한 당시에도 군중의 밀집 현상이 일어났다. 그래서 슈펭글러가 잘 진술한 것처럼, 로마제국은 지금과 마찬가지로 거대한 건물을 축조해야 했다. 대중의 시대는 거대함의 시대다.


이 대중 지배는 로마제국을 멸망으로 이끌었다. 그런데 우리는 대중의 야만적인 지배 아래 살고 있다. “오늘날 대중의 양식이 생활의 모든 영역에서 승리를 거두고 있으며 ‘행복한 소수’를 위해 남겨진 것처럼 보였던 최후의 보루마저 위압하고 있다.” 그러므로 현실의 대중 지배에 숨겨진 적극적 의미를 밝혀내야 한다. 대중 지배가 특히 불확실한 형태를 띠고 있기 때문에 더욱 그 의미를 밝혀내야 한다고 오르테가는 본다.


“우리 시대의 소용돌이치는 격렬한 대중의 도덕적 반란은, 모든 운명이 그러하듯 무시무시하고 위압적인 통제 불능의 애매모호한 요소를 내포하고 있다. 그것은 우리를 어디로 이끌고 가는 것일까? 그것은 절대적인 악일까? 개연적인 선일까? 우리 시대 위에는 엄청난 우주의 의문부호와 같은 거대한 것이 세워져 있다. 이는 단두대나 교수대이기도 하고 개선문이 될 수도 있는 불확실한 형태를 취하고 있다.”


그리고 분석해야 할 내용을 두 가지로 정리한다.


“첫째, 오늘날 대중은 과거에 소수자의 전유물로 여겨진 것과 대부분 일치하는 중대한 역할들을 행사하고 있다. 둘째, 그와 동시에 대중은 소수자에게 온순하지 않다. 이들은 소수자에게 복종하지도 않고 따르지도 않으며 존경하지도 않는다. 반대로 소수자를 밀어내고 그들을 대신한다.”(31)


이를 보면 대중의 반역은 소수자를 따르지 않고 소수자를 밀어내고 그들을 대신하는 것을 말한다.

그러면 어떻게 오늘날 대중은 과거에 소수자의 전유물로 여겨진 것과 대부분 일치하는 중대한 역할을 하게 되었는가? 오르테가는 대중이 어떻게 해서 이러한 중대한 역할을 하게 되었는지, 그 요인을 두 가지로 요약했다. 즉 두 세기에 걸친 진보적인 대중교육과 그와 병행한 사회의 경제적 번영이다.


18세기~19세기에 유럽에서 진보적인 대중교육은 어떤 내용으로 진행됐는지 보자. 18세기에 일부 소수자 집단은 모든 개인은 인간으로 태어났다는 그 사실만으로, 또한 어떠한 특별한 자격이 요구되지 않고도 기본적인 정치적 권리, 즉 인간과 시민의 권리(인권과 시민권)를 갖고, 더 나아가 엄격히 말해 그러한 권리는 모두에게 공통된 것이며 실재하는 유일한 것임을 알았다. 특별한 자질에 따르는 다른 모든 권리는 특권이라는 비난을 받았다. 이것은 처음에는 소수만이 가진 단순한 이론, 이념이었는데, 곧 그들은 이 이념을 실천하기 시작하고, 이를 실현하도록 요구하고 주장하기 시작했다. ‘모든 사람은 태어날 때부터 자유롭고 존엄하며 평등하다’는 사상이 18세기에 일부 소수자 사이에 싹터 점차 확산되고 뿌리내렸던 것이다.


그런데 19세기 내내 대중은 이런 권리들을 하나의 이상으로 보고 점차 열광하였지만 권리로는 느끼지 못하고 그것을 행사해보지도 않았고 그 효력이 발휘되도록 시도하지 않았다. 그래서 오르테가는 “그들은 민주적인 법률 아래서 살면서도 여전히 구체제하에 있는 것처럼 인식하고 살고 있었다”고 했다. ‘민중’(pueblo)-당시에는 이렇게 불렀다-은 자신들이 주권자임을 알고 있었으나, 그러나 그것을 믿었던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20세기에 와서 대중이 달라졌다. 그 이상은 하나의 현실이 되었다. 사회생활의 외형적인 강령인 법 제도 속뿐만 아니라 모든 개인의 마음속에서도 현실이 되었다. 각 개인의 이념이 무엇이든, 심지어 그러한 권리를 승인하는 제도를 파괴하거나 악용하려고 하는 경우조차도 현실이 되었다. 특별한 자질을 갖지 않은 개인으로서 인간 존재 자체가 주권을 갖는다는 것은 과거에는 이념이나 법적 이상이었던 것이 이제는 평균인의 심리 속에 자리를 잡았다. 오르테가는 이러한 기이한 대중의 도덕적 상황을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은 오늘날 세계에서 일어나기 시작한 일은 전혀 납득할 수 없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리고 ‘이상(理想)’이 더는 힘을 발휘하지 못한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고 했다. 전에는 이상이었던 것이라고 현실의 일부가 되어버리면 필연적으로 더는 이상일 수 없다. 이상의 속성이자 그것이 인간에게 미치는 영향인 권위와 마력은 사라지기 때문이다. 그래서 “관대하고 민주적인 영감에서 발하는 평등권들이 열망과 이상에서 욕구와 무의식적인 전제로 바뀌고 말았다.” 평등권들을 열망하고 존중하는 의식은 사라지고 누려야 할 권리로 당연한 것으로 여기게 된 것이다. 이러한 평등권이 현실이 되면서 대중은 주인의식과 존엄성을 갖게 되었다. 평등권들이 현실이 되면서 인간의 영혼을 내면의 예속에서 벗어나게 하여 영혼의 내부에 주인의식과 존엄성을 불어넣었다. 평균인(대중)이 스스로 자신과 자기 인생의 주인이자 소유자, 통치자라고 여겨야 한다는 것이다. 이것이 이제 실현되었다.


주인의식을 갖게 된 평균인은 스스로 행동하고 온갖 유희를 원하고 자신의 의지를 강력히 주장하고 모든 예속을 거부하며 누구에게도 순순히 따르지 않고 자신과 자신의 여가를 소중히 여기고 자신의 의복에 신경을 쓴다. 이러한 것들은 주인의식에 수반되는 영구적 속성들의 일부이다. 그런 속성들이 오늘날 평균인과 대중 속에 존재하고 있음을 목도하고 있다. 그러니까 전에는 상위 소수자만의 전유물이었던 “중요한 활동”이 이제 평균인의 삶을 이루고 있다.


그런데 이 유럽의 역사 수준의 상승을 일부에서는 미국의 영향이라고 하는데, 오르테가는 이를 단연코 부정한다. 유럽은 미국화되지 않았다. 미국에서 큰 영향을 받은 적도 없다. 그는 이렇게 단언한다.



“대중의 승리와 그에 따른 엄청난 생활 수준의 상승이 유럽에 나타난 것은 내부적인 요인, 즉 두 세기에 걸친 진보적인 대중교육과 그와 병행한 사회의 경제적 번영 덕분이다. 그 결과 미국인들의 생활에 나타난 가장 두드러진 특징과 일치하게 된 것이다.”(오르테가 이 가세트 지음, 《대중의 반역》, 황보영조 옮김, 역사비평사, 2005, 35쪽)


지금까지 살펴본 것처럼 두 세기에 걸친 진보적인 대중교육과 사회의 경제적 번영에 힘입어 대중은 과거에 소수자의 전유물로 여겨진 것과 대부분 일치하는 중대한 역할을 하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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