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 있는 영혼들도 없이 홀로 서 있는 유럽인

호세 오르테가 이 가세트 "대중의 반역"

by 정유철

오르테가는 대중이 지배하는 시대의 가장 놀라운 특징의 하나를 밝혀내기 위해 “삶에 서로 다른 수준의 높이가 있다”는 점에 주목한다. 모든 역사적 시대는 생활 수준이라는 이 이상한 현상에 관해 각기 다른 느낌을 보여주는데, 사상가와 역사들이 그 명백하고 중요한 사실에 결코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는 것이 놀랍다고 한다. 그래서 오르테가는 각기 다른 시대의 높이에 대한 생각을 검토한다.


먼저 과거의 시대가 자신들의 시대보다 높고, 더 나은, 더 완벽한 시대라고 보는 경우다. 그리스와 로마의 교육을 받은 사람들은 과거를 ‘황금시대’라고 보고 호주의 원주민 아보리지니라는 ‘아르체닌가’(꿈의 시대)라고 부른다. 이들은 과거, 곧 ‘고전’ 시대를 존경했으며, 그 삶이 자기시대보다 더 넉넉하고 풍부하며 더 완전하다고 보고 과거의 시대를 동경했다. 이런 생각에 사로잡히게 되자 생의 위축감, 즉 감소, 쇠퇴, 맥박 저하 등이 인상이 강해졌다. 그 후 두 세기가 지나자 로마제국은 쇠퇴하였다.


반대로 자신의 시대가 최종적인 높이에 올랐다고 생각한 시대들이 있었다. 로마제국의 트라야누스 황제(53?~117) 시절이 그랬고, 19세기 유럽인들이 그랬다. 당시 유럽인들은 인간의 삶이 마땅히 도달해야 할 높이와 여러 세대에 걸쳐 열망해온 수준, 앞으로 영원히 지속되어야 할 위치에 도달했다고 생각했다. 절정에 이른 시대는 준비 시대, 곧 절정에 이르지 못한 시대들의 결과로 등장한 것이며 잘 성숙한 시대는 그런 시대들을 딛고 세워진 것이라 생각했다. 19세기 유럽인드은 19세기가 과거를 중심으로 그 바탕 위에 서 있다고 생각했고 또 실제로 과거의 정점이기도 하다는 만족감을 느끼고 있었다. 그래서 과거의 시대에 충실했다. 과거에 속박되어 있었다. “그들은 얼굴을 뒤로 돌려 자신의 시대 속에서 완성되는 과거를 바라본다.”[49]


그러면 20세기, 현대인은 삶의 수준을 어떻게 생각하는가? 오르테가는 “현대인은 자신의 삶이 과거의 어떤 삶보다 낫다고 생각하거나 거꾸로 과거 전체가 현대인에게 시시하다고 여긴다”고 말한다. 애초부터 우리의 삶은 과거의 어떤 삶보다도 훨씬 풍부하다고 느낀다. ‘더 나은 삶’이라고 여기면서 과거에 대한 모든 존경과 관심을 잃어버렸다. 그 때문에 우리는 모든 고전주의를 백지로 돌리고, 어떠한 과거에서도 모범이나 규범을 인정하려고 하지 않은 시대와 처음으로 직면해 있다. 그러면서 몇 세기에 걸쳐 면면히 발전하여 그 결과 돌연 나타난 시대, 그러나 시작, 여명, 개시, 유년기라는 인상을 주는 시대와 조우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다보니 저 유명한 르네상스도 우리에게는 답답하고 촌스럽고 헛된 몸짓을 한 평범한 시대로 보인다고 오르테가는 지적한다.

이러한 상황을 오르테가는 죽은 자들이 실제로 죽어 유럽인들은 살아 있는 영혼도 없이 홀로 서있다고 설명한다. 그는 이러한 상황을 《예술의 비인간화》에서 요약한 것으로 다시 소개했다.


“과거와 현재 사이의 심각한 분리는 우리 시대의 보편적 현상으로서 근래의 삶에 독특한 당혹감을 불러일으키는 다소 곤혹스러운 의혹을 내포하고 있다. 우리는 별안간 지상의 외톨이가 되었으며, 죽은 자들은 외견상 죽은 것이 아니라 실제로 죽었기에 더 이상 우리를 도울 수 없다고 느낀다. 남아 있던 전통적 정신은 모두 증발해버렸다. 과거의 모델과 규범, 기준은 이제 아무 소용이 없다. 예술이든 과학이든 정치든 우리는 우리의 문제를 과거의 도움을 받지 않고 현실 속에서 해결해야 한다. 유럽인은 그의 곁에 있던 살아 있는 영혼들도 없이 홀로 서 있다. 마치 페터 슐레밀(Peter Schlemihl)이 자신의 그림자를 잃어버린 것처럼. 이것은 늘 정오에 일어나는 일이다.”[50]


오르테가에 따르는 인간은 두 번 죽는다. 한 번은 육체적인 사망이다. 두 번째 우리가 그들을 잊는 것이다. 우리가 죽은 이들을 기억하고 의지하면 죽은 이들은 우리 곁에 살아 있는 영혼으로 존재한다. 그런데 20세기 유럽인은 과거와 심각하게 분리되어 있다. 과거와 단절하여 죽은 이들이 실제 죽었다. 그래서 홀로 서 있다.


과거와의 심각한 분리, 이것이 오르테가는 대중이 지배하는 시대의 가장 놀라운 특징의 하나라고 지적한 것이다.

그러면 20세기 유럽인은 시대의 높이를 어떻게 생각하는가?


“그것은 시대의 절정이 아니다. 하지만 과거의 어떤 시대보다 상위에 있고, 알려진 모든 정상보다 더 높이 있다고 생각한다. 우리 시대가 갖고 있는 느낌을 스스로 표현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우리 시대는 다른 시대보다 더 충만하다고 생각하며 동시에 하나의 시작이라고 여긴다. 그러면서 죽음의 고민에 빠지지 않으리라는 확신도 없다.”[50]

오르테가는 이를 다시 이렇게 표현한다. 다른 시대보다 우월하지만 자기 자신보다는 열등하며, 매우 강하면서도 자신의 운명에 대해서는 확신을 갖지 못하고, 자신의 힘을 자랑스러워하면서도 그것을 두려워하는 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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