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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승 Jan 30. 2021

타이밍이 중요하기 때문에

세 번째 이유

J

  우리는 많이 엇갈렸다. 연수원에서 전화로 다투던 그 친구와 오랜 연애를 끝낸 뒤 난 네 생각을 하곤 했다. 하지만 네게 다가설 수 없었다. 네 말대로 나이가 많은 내가 걸리기도 했고 네가 남자 친구가 있을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무엇보다 그때가 되어서야 너에게 연락하는 것이 염치가 없는 것처럼 느껴졌다. 이미 흘러간 인연이니 흘려보내는 게 맞다고도 생각했다. 너도 잘 알겠지만, 사랑은 타이밍이라는 말이 있듯이 호감이 언제나 좋은 관계로 발전하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지나간 것은 지나간 대로 두는 게 좋은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우리가 단 둘이서만 만나게 된 날이 온 것은 우리가 처음 알게 된 후 삼 년이 되던 해의 겨울날이었다. 연수원 모임이 끝난 후 네가 내가 먼저 연락해왔을 때 내가 얼마나 설렜는지 모른다. 애써 큰 기대를 하지 않으려고 노력하며 너와의 만남을 준비했다. 괜한 기대를 가졌다가 얻게 될지 모를 상처가 두려웠다.


 너와 여의도의 한 지하 피자집에서 만나 감바스 알 아히요에 생맥주를 마셨다. 5살이나 어린 너와 시시콜콜하게 인생을 논했다. 대화가 끊길 새 없이 즐거운 시간이었다. 전철역 입구에서 헤어지려던 찰나 문득 지금이 아니면 안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저런 이유들로 놓쳐 버렸다고 생각했던 시간이 다시 내 앞에 돌아와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너 같은 사람을 내가 어디서 만나고 사랑하게 될 수 있을까. 그냥 널 보낸다면 오늘 하루도 지나간 미련 중 하나가 될 것임에 분명했다. 난 네 이마에 입을 맞추었고 넌 깔깔거리며 이게 뭐냐고 물었다. 그리고 우린 사귀게 되었다.


 연애가 아니라 어떤 일이든 적절한 시기를 놓치지 않는 것은 중요하다. 우리가 결혼을 생각하고 있는 지금도 바로 그 타이밍이라고 생각한다. 이 시기를 놓쳐버린다면 우리가 언제 다시 결혼을 논할 수 있을까? 비록 여러 가지 쉽지 않은 상황들이 가득한 것으로 보이는 시기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니, 그래서 더더욱 우리가 이 시기를 놓쳐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S

  우리가 연수원 모임 자리에서 다시 만난 그해는 내가 조금은 버거웠던 연애를 끝내고 난 후 휴식기를 가지고 있었던 무렵이었다. 이 기간 동안 내 인생에서 가장 진지하게 내 반평생을 어떤 사람과 보내고 싶은지 고민을 많이 했던 것 같다. 


 살면서 참 쉼 없이 연애를 했다. 그중에는 아주 짧았던 연애도 있었고, 지루하게도 길었던 연애도 있으며, 불 타올랐던 연애도 허무했던 것도 있었다. 정말 이런 세상이 있구나 싶은 정도의 부자에 4개 국어에 능통한 엄친아도 만나봤고(아직도 그 사람이 날 왜 만났는지는 모르겠다), 내 이상형인 허지웅 같은 남자도 만나봤고, 피 한 방울 안 섞인 남한테 이래도 되나 싶을 정도로 다정다감하고 가정적인 남자도 만나봤다. 사실은 돌싱이 었다고 뒤늦게 고백했던 사람도 있었고, 나보다 족히 30살은 많았던 팀장님께 취중 고백도 받아봤으니 얼추 유형별로 한 번씩은 경험해봤다는 생각이 든다. 그런 과정에서 내가 어떤 사람과 내 남은 세월을 함께하고 싶은지 결론 내릴 수 있었다. 내가 나 여서 좋아하는 사람, 끊임없는 꿈을 가지고 있고 또 끊임없이 꿈을 꾸는 나를 사랑해 주고 이해해 주는 사람을 만나고 싶다고 생각했다.


 그날 공덕의 족발가게에서 난 네 건너편에 앉았다. 한참 얘기가 오가던 중 네가 오랫동안 싱글인 상태라는 걸 알게 되었다. 소개팅을 해달라고 얘기하던 나를 보며 여러 차례 나 정도면 괜찮지 않냐고 말하는 네가 눈에 들어왔다. 언젠가 네게 말했던 것처럼 몇 개 안 되는 글을 올려둔 네 인스타그램을 보며 무언가 모르게 나와 닮았다는 생각을 한 적이 있었다. 그렇기에 네 관심이 싫게만 느껴지지 않았고 나도 네가 어떤 사람인지 궁금해졌다. 


 담배를 안 끊겠다고 할까 봐 단 한 번도 말해준 적이 없지만 그날 족발집 문 앞에서 전자 담배를 내뿜는 넌 홍콩배우 같아 보였다. 돌아가는 길에 나는 너에게 먼저 연락을 했고 우리가 사귀게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고 일주일 후 우리는 그렇게 사귀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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