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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승 Jan 30. 2021

계획은 어쨌든 변하는 것이기 때문에

네 번째 이유

 J

  계획은 늘 변하고 인생은 예기치 못한 방향으로 흘러간다. 내가 너와 만나게 된 것도 그렇고 내가 너를 두고 이 머나먼 캐나다로 오게 된 것도 그렇다. 하지만 인생이 일직선으로 흘러가는 게 아니듯 계획이 변하는 것이 나쁜 것은 아니다. 시시각각 변하는 상황 안에서 굳이 한 가지 계획을 고집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고 중요한 것은 변하는 상황 안에서 중심을 잡고 옳은 방향을 향해 나아가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우리가 도중에 헤어졌던 것, 내가 이 곳으로 오기로 결정했던 것 모두 처음의 계획에는 없었던 일이다. 하지만 그게 결국 나쁜 것은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결혼에 대해 더 진지하게 생각하게 된 것이니까. 넌 오 년 뒤의 미래를 얘기하지만 그때의 상황과 계획이 어떻게 바뀌게 될지는 사실 아무도 모르는 일이다. 그동안 또 어떤 상황이 닥쳐 우리가 불안함에 놓일지는 모르는 일이다. 타이밍과 시기가 중요하다는 말은 결국 바꾸어 말하자면 그다음에 언제 더 좋은 시기가 올지 그 시기가 오긴 할지 알 수 없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그 안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가장 최선의 결과를 바라보는 일을 하는 것이다. 물이 들어올 때 노를 젓는 것이다. 그리고 지금 우리 앞에 놓인 최선은 우리가 함께 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S

  사귄지 갓 백일 쯤 되었던 초 여름, 넌 우리가 헤어지는 이유를 물었다. 사실 난 네가 결혼에 대한 얘기를 자꾸 꺼내는 것도, 받지 않으면 수 차례 전화를 거는 것도, 만나서 함께 하는 시간들도 그 모든 것이 어려웠다. 내가 인간으로서 존경하는 사람을 만나는 것과 이성으로 좋아하는 것은 별개의 것이구나 하고 새삼스레 깨닫고서 그 어떤 노력도 하지 않은 채 너에게 이별을 통보했다.


 헤어지고 나서 넌 거의 2달간 격주에 한 번씩 잘 지내냐는 연락을 했다. 처음엔 이게 바로 말로만 듣던 '새벽 2시-자니?' 남인가 싶어 읽씹으로 대응했다. 하지만 정말 어이없게도 네 문자가 안 오던 그 주에 네 '자니'가 그리웠다.(다시 만났을 때 넌 이게 네 전략이라고 알려줬다. 먹혔다)


 다시 만나서 차를 마시로 하기로 한 전날 저녁 난 너와 헤어진 이유를 되새김질했다. 헤어져놓고 다시 널 그리워하는 내가 참 염치없다는 생각도 했지만 내 찰나의 자존심으로 후회하고 싶지 않았다. 너에 대한 내 마음을 만나서 확인을 해봐야겠다고 생각했다.


 당산역 할리스 옆에서 흰 셔츠를 입은 너와, 파란 셔츠를 입은 나. 그렇게 우리는 재회했다. 그날 집으로 돌아오던 길 우리가 같이 보았던 분홍빛 구름 사이의 석양, 기분 좋은 늦은 여름 오후의 온도, 차 안에서 나오던 너와 네가 좋아한 아재 감성의 노래, 그리고 미소 짓고 있던 네 옆모습, 그리고 기분 좋은 심장의 쿵쾅거림을 아직도 생생히 기억한다. 난 그 순간부터 내가 널 처음으로 좋아하게 되었다고 확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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