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구승 Jan 31. 2021

내가 여기 함께 준비한 부록이 환불 안되기 때문에

스물다섯 번째 이유

J

  사실 프러포즈의 정석인 반지를 살까 했지만 분명히 잘 안 끼고 다닐 것 같아서 한 번이라도 더 하고 다닐 것 같은 목걸이를 골랐다. 사실 네가 목걸이를 하고 다니는 것도 본 적 없지만 내 휴대폰 배경화면에서 웃고 있는 네 앳된 사진에서 목걸이를 한 네가 활짝 웃고 있다. 그 모습이 너무 예쁘다고 생각했고 언젠가 내가 목걸이를 선물하고 싶다고 생각했다.


 티파니에서 목걸이를 골랐다. 여자들이 티파니 박스를 보면 마음이 흔들린다는 얘기를 어디선가 들었던 것 같다. 아무리 운동복이 주 패션인 털털한 너라도 그래도 너도 이런 거 하나쯤은 있어야 하지 않나 싶기도 했다. 비행기 표를 발권하고 가장 먼저 생각난 일이라 주말이 되자마자 시내 중심에 있는 티파니 매장으로 향했다. 사장님으로 보이는 중국계 아주머니가 무슨 선물이냐고 묻는데 실실 웃음이 났다. 프러포즈를 할 거라니까 이 것까지 선물하면 금상 천화라며 삼백만 원 다이아 반지를 추천했다. 다음에 오겠다고 말하며 문을 나섰다. 비 오는 지긋지긋한 밴쿠버의 하늘마저도 너무 예쁘게 보였다.


 봉투가 비에 젖을까 봐 꼭 안고 돌아왔다. 이왕 나온 김에 들른 카페에서도 봉투가 구겨질까 봐 가방에 넣기도 싫고 혹시나 누군가의 시선을 끌까 봐 엉덩이 옆에 무심한 듯 꼭 붙여 놓고 손잡이를 내내 잡고 있었다. 쓸데없는 짓 했다고 한 소리 들을 것 같기도 하지만 이 걸 네게 주는 지금은 30일이 지나서 환불도 되지 않아 어쩔 수 없다. 티파니는 환금성도 안 좋아서 팔래야 제 값 받지도 못한다고 하더라.


 그러니까 어쩔 수 없이 그냥 예쁘게 하고 다니면서 우리가 함께 할 미래를 준비하는 게 어떻겠니?




S

  프러포즈를 받은 지 얼마 되지 않아 우리는 헤어지게 되었습니다. 많은 이유가 있겠지만 물리적으로 함께할 수 없는 시간이 점점 길어지고, 그 끝이 보이지 않자 서로가 너무 두려웠던 탓이겠지요. 그 사람은 자신이 제 마음속에서 잊히는 것이 두렵다며 어느 날 사라졌습니다. 원망하진 않아요, 나도 가끔 사라지고 싶었던 적이 수없이 있었기 때문이지요.


 다만, 그 사람을 공항에 배웅하고 혼자 펑펑 울며 돌아오던 그 날, 집 밑 카페에 몇 시간을 앉아 써 내려갔던 내 답장을 마무리지 하지도, 또 보내지 못한 채로 그렇게 헤어지게 된 점이 속상했습니다. 내가 얼마나 너를 사랑했는지, 우리의 관계에 진심이었는지, 또 얼마나 그리워했는지는 내 마음을 제대로 한번 알려주지 못했다는 것이요.


 손 끝에 내 마음을 꾹꾹 눌러 담아 글을 써 내려가며, 그리고 답장을 마무리 하며 오히려 제가 알게된 것은 그때의 우리가 얼마나 서로를 그리워했는지, 함께하기 위해 얼마나 노력했고, 고민했고 아파했었는지 입니다. 시간이 꽤 지난 지금, 지난 날들을 되새김질 하면서 글을 쓰는 내내 난 참 행복한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작가의 이전글 내가 좋은 배우자가 될 것이기 때문에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