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구승 Jan 31. 2021

나는 왜 일을 하는가

시총 10위 대기업에서 외국계 스타트업으로 이직하기

  7년 전 취업 준비를 하면서 종로의 한 토익 스피킹 스터디에 에 참여했을 때였다. 예시 답변을 달달 외우는 일이 지루해질 즈음에 스터디원들과 '우리는 왜 일을 하는가'에 대한 원론적인 주제에 대하여 이야기를 하게 되었다. 그 당시 스터디장이 었던 수민 오빠는 일은 돈을 벌기 위한 수단이라고 정의했다.


  나는 당시 오빠가 틀렸다고 생각했다. 일이란 내 자아실현을 위한 것이라고 말했다. 잘할 수 있는 일을 하고 그 일을 통해 성취감을 얻고 성장할 수 있는 것이라 믿었다. 하루 최소 9시간을 해야 하는 일을 단순히 돈을 벌기 위한 수단이라고 생각해야 한다면 너무 고통스럽지 않냐는 게 내 논리였다.




  나는 운 좋게 대기업에서 첫 사회생활을 시작하게 되었다. 철저하게 분업화된 이 곳에서 직원들은 회사나, 업무에 대해서는 분노조차도 사치로 느끼는 것처럼 기계적으로 시킨 일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회사는 늘 최대 실적을 냈고 고속 성장했다. 얼마 가지 않아 시가총액 10위권 안에 들었다는 뉴스가 들려왔고 주식은 내가 입사했을 때 보다 두 배가 오르며 분기 실적 발표마다 신고가를 갱신했다.


 회사는 나서서 주도적으로 행동하는 사람 보다, 말을 잘 듣는 사람을 좋아했다. 후배들을, 동료들을 짓밟은 사람들 만이 승승장구를 하고 매스컴을 탔다. 오히려 후배들을 아끼고, 옳은 말을 하는 훌륭한 선배들은 좌천이 되어 지방으로 발령 나는 경우가 허다했다. 더 무서운 건 어느 순간부터 나는 그것이 이상하게 느껴지지 않았다.

 

 4차 산업과 데이터 분석에 대한 책과 강연이 쏟아져 나왔다. 이 것 저것 공부하는 게 취미인 나는 그 변화의 방향에 동참해야겠다고 생각하여  다양한 강의를 듣고 업무에 적용할 수 있는 방안을 구상하여 리더에게 의견을 여쭈었다. 내 얘기를 듣던 직속선배는 무슨 말인지는 잘 알겠지만 높은 분들께 설명하기 어렵고 그렇게 한가하시지도 않으실 거다 라며 현실을 일깨워 주었다.


 그제야, 스터디장 오빠가 했던 말이 옳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직장은 일개 구성원 개인의 자아실현이 허락되는 곳이 아니었다. 회사의 성장을 위해 자아의 성장을 포기해야 하는 곳이었다.


  명함에서 회사 간판을 떼고 나서 내 이름만 남았을 때 난 대체 뭘 할 수 있을까?


 회사 퇴사를 결심하기까지 수없이 많은 고민을 했다. 대기업에 합격한 걸 누구보다 좋아하며 친구들에게 자랑하던 친오빠가 생각났다. 엄마는 어딜 가서 자식 농사 잘 지었다는 얘기를 듣는다며 이렇게 행복한 적이 없단 말을 하곤 했다. 코로나 이후 많은  중소규모의 회사에서 구조조정을 감행했으며 직원들의 월급이 연체된다는 뉴스가 왕왕 흘러나왔다. 새로운 모임에 가서 회사 이름을 대면 사람들은 성장하는 회사에 있어서 걱정이 없겠다는 얘기를 했다.


 물론 이 회사는 망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이 조직에서 벗어나지 않는 다면, 회사가 아닌 내가 천천히 또 철저히 사회에서 도태될 것이라는 확신이 들었다. 언젠가 들었던 강연에서 회사에 십 년 후 네가 닮고 싶은 모습이 없다면 지금 당장 나가야 한다고 말했던 것이 기억났다.


 내 10년 후는 지금의 내 모습과 다르지 않을 것 같다는 확신이 들었다.


그리고 난 회사를 떠났다.


작가의 이전글 내가 여기 함께 준비한 부록이 환불 안되기 때문에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