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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승 Feb 06. 2021

재입사되나요?

시총 10위 대기업에서 외국계 스타트업으로 이직하기

퇴사와 이직 소식을 뒤늦게 전해 들었다며 전 직장 동료들이 안부를 물어오곤 한다. 대부분의 안부 인사는 '거긴 어때'로 시작해서 '그래서 후회 안 해?'로 끝난다.




전 직장에서 만난 동료들은 어떻게 이렇게 비슷한 사람들만 추려냈을까 생각이 들 정도로 대부분이 유하고 온순했다.(인적성 시험은 정말 괜히 보는 게 아니라는 것에 동기 대부분이 찬성했다) 16년, 17년 김영란법과 미투 운동이 한참 매스컴을 타고난 후에는 주 1회는 기본이던 저녁 회식도 사라졌고, 52시간제 시행을 알리며 대기업이 본보기가 되어야 한다는 말이 뉴스에서 흘러나오자 팀장님은 팀원들 등을 떠밀며 제발 나가 달라하셨다. 언젠가부터는 심지어 퇴근 40분 전부터 퇴근 송이 흘러나와 집중을 방해했다. 꼰대 상사와 고인물 부장님들은 당연히 존재했지만 공채로 일 년에 몇십 명을 뽑았던 탓에 같이 욕해 줄 동료도 충분했다. 조직의 성과와 무관하게 명절, 반기, 연간으로 꼬박꼬박 나오는 성과급은 내가 좋아하는 친구들, 가족들과 더 풍요롭고 행복한 시간을 보낼 수 있게 해 주었다.


전 직장은 모든 게 너무 완벽했다.


입사 4년 차가 되던 해 난 신사업 TFT에 참여하게 되었다. 약 한 달간 시장분석, 파트너사 미팅 등을 바쁘게 진행했다. 한달 후 프로젝트 리드는 꼬박 며칠에 걸려 자료를 모아 임원에게 올릴 보고서를 작성하였다. 심지어 보고 당일엔 말끔한 정장 차림으로 출근을 하셨다. 찡긋 웃어보이시며 임원실로 들어가시는 리드님께 두 손 화이팅을 전했다.

그러고 며칠 후 TFT 해체라는 얘기를 듣게 된다. 리드님은 우리가 이미 다른 시장에서 너무 잘하고 있기 때문에 새로운 시장에 도전하면서 까지 리스크를 감수할 필요가 없다는 게 윗분들의 생각이라며 담담하게 말씀하셨다. 그럼 애초에 TFT는 왜 만든 거냐고 묻는 내게 아무 대답을 하지 않으셨다.


타자기를 두드릴 수 있는 두 팔과, 출근할 수 있는 두 다리만 남기고 다 잃은 느낌이었다.




스타트업으로 이직한 지 4개월 차. 여긴 전혀 다른 세상이다. 새로운 아이디어에 박수를 치며 기회라고 판단되면 모두가 뛰어들어 온 정력을 쏟아붓는다. 아니다 싶으면 언제 그랬냐 듯이 쿨하게 돌아선다. 그 행위를 무한 반복한다.

 

어제와 오늘이 너무도 다른 이 곳에서는 누구도 완벽할 수 없음을 인정하며 끊임없이 공부한다. 기존의 경험과 새로운 지식을 연계한다. 일을 지시하는 사람이 없지만, 정신 건강이 괜찮을까 걱정이 될 정도로 밤 낮 없이 일을 한다. 상사 보고는 메시지 한 통이면 1분 내 회신을 받게 된다. 모두가 경력직 수시채용이라 입사 동기가 없지만 욕하고 싶은 고인물도 없다. 명절 떡 값과 꼬박꼬박 나오던 성과급은 없지만 내 능력에 따라 개인 인센티브를 받게 된다.


어디가 더 나은지는 개개인의 판단이지만 난 껄껄 웃으며 대답을 한다.


'선배, 혹시 우리 재입사되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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