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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승 Feb 11. 2021

Connecting the dots

시총 10위 대기업에서 외국계 스타트업으로 이직하기

입사 후 1년은 모든 것이 힘들었다. 학생 때와는 또 다른 형태의 규율에 적응해야 했고 그리고 그 규율의 대부분은 사회의 암묵적인 룰이라 스스로 깨우쳐야 했다. 바깥보다 더 깜깜한 방 속에서 연신 손을 허공을 휘적대며 스위치를 찾는 과정과 비슷했다.


언젠가부터 두통과 타이레놀을 내내 달고 살았다. 물리치료와 도수치료에 피 같은 월급을 갖다 바쳤지만 두통의 강도는 더 심해졌다. 심지어 주말에도 두통 때문에 침대에 꼼짝없이 누워있게 되는 날이 많아졌다. 도저히 참을 수 없어 퇴근길 들렸던 정형외과의 의사 아저씨는 효과가 가장 즉각적이라며 뒤통수 정중앙에 주삿바늘을 꼽아 주셨다. '빠지직'  단단한 머리 근육을 파고들던 주사 바늘 소리에 이러다간 진짜 죽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때부터 생존을 위한 규칙적 운동을 시작하게 되었다. 실제로 두통은 눈에 띄게 줄어들었으며, 숨겨진 키 2cm를 발견하였다.(필라테스 만세!)


비슷한 해에 중국어 스터디를 시작했다. 당시 국내 이커머스 세일즈 매니저였기에 업무에서 사용할 일은 없었지만, 일 외의 취미 생활이 필요하다 생각이 들어 시작하게 되었다. 매주 일요일 1시부터 3시까지 강남역의 한 스터디룸으로 출근한 지 반년쯤 되었을 때 해외사업부에서 중국어 가능 대리급을 충원한다는 공고를 올렸다. 당시 팀원이던 내가 최종 선발되었다. 우리 회사의 해외사업부는 외국어 특기자 특별채용 및 경력직으로 구성되어 있어 국내사업부 사람들에겐 미지의 세계 같은 곳이었다. 공채 출신이었던 난 의도치 않게 간접 이직 체험을 하게 되었다.


4년 차의 나는 컴퓨터 공부를 시작하였다. 문송이 출신으로 세일즈 업무를 하며 마음 한구석엔 늘 제일 먼저 로봇에게 대체될 거라는 불안함이 존재했다. 운 좋게 이커머스 업무를 하며 자연스레 4차 산업이니, 빅데이터니 하는 것들이 눈에 들어왔다. 나는 가장 만만해 보이는 SQL 자격증 독학으로 취득했다. 그런 내가 기특했던지 팀장님은 그룹사에서 진행하는 AI 교육과정에 날 추천해주셨고 그 곳에서 데이터 사업을 하는 회사로 당장 도망가라는 은인을 만나게 된다.


그 후로도 스펙업, 독취사, OKKY과 같은 스터디 카페를 전전하며 나보다 5살 씩은 어린 친구들과 R, Python, AI 스터디를 진행하며 IT회사로 탈출을 구체화 하게 된다.


나는 대리 2년 차가 되던 해 원했던 외국계 IT 기업의 경력직을 구하는 채용 공고를 보게 되고 이직에 성공하게 되었다.


잡스님의 "Connecting the dots" 문구를 가장 좋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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