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찌르찌르 Dec 26. 2018

2. 첫째 언니와 누나는 '꼰대'가 됐다  

너 참 천박하다.

이 말을 들은 지 8년이 지났는데도 당시의 상황이 생생히 떠오른다. 유독 나를 싫어하는 부장이 있었다. 기사를 쓴 후 보고하면 부장이 데스킹을 봤는데 이틀에 한 번 꼴로는 꼭 일이 터졌다. 이날도 내 기사를 보던 부장이 기사에 쓰인 '문장'이라는 주어의 자리를 나로 대신하며 조준사격을 했다. 욕 한 마디 들어보지 못하고 온실 속 화초처럼 자란 것은 아니었지만 이 말은 충격적이었다. 아마 가늘게 뜬 부장의 가자미 눈과 비아냥 조의 어투가 말의 무게를 키운 것 같다.



이제껏 겪은 꼰대들 중 최고는 그 부장이었다. 기자생활에 익숙해지기 전까지는 남자친구 사귈 생각하지 말라는 선배, 입에 욕 주머니를 차고 있는 상사, 일은 모두 후배들에게 맡기고 공은 홀로 차지하는 월급 흉노족 등등이 있었지만 그 부장에 비하면 새발의 피였다. 거의 매 점심시간 2000원을 주고 두유와 단팥빵을 사 오라고 시켰다. 일하는 중 담배를 사 오라는 주문도 있었다. '더 살색이 보이는 사진을 올려라'는 등 성희롱 발언도 서슴지 않았고, 화가 난다는 이유로 물건을 던지기도 했다.


이중에서도 가장 힘든 건 '말이 안 통한다'는 것이었다. 자신의 의사에 반하는 말을 하면 사무실이 쩌렁쩌렁 울리는 목소리로 화부터 냈다. 문제가 해결될 가능성이 없으니 그 부장 밑에 있는 내내 암울할 수밖에 없었다. 


꼰대는 자신이 갖고 있는 구태의연한 사고방식을 다른 이에게 강요하는 사람을 일컫는다. 이들의 특징은 이 부장처럼 다른 사람의 말을 듣지 않고, 다름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다. 내 의견에 반하는 사람은 '다름'이 아니라 '잘못'이었다.



시간이 흘러 부장 한 마디에 화장실로 뛰어갔던 20대 여기자는 곧 사회생활 10년 차를 채우는 30대 중반이 됐다. 그리고 뒤에서 부장을 '꼰대'라고 욕했던 나는 2018년 신(新)꼰대로 탄생했다.


굳이 '신新'자를 붙인 이유는 그 시절의 부장 꼰대와 나는 다르기 때문이다. 내 안의 꼰대 괴물이 얼마나 더 자랄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다름'을 '잘못'이라고 정의하지는 않으려고 노력한다. 그리고 솔직히 마음 한 켠으로는 현재를 누리고 자유로움을 추구하는 20대들의 삶의 태도를 부러워하기도 한다.


난 베이비붐 세대의 자녀인 밀레니얼 세대에 속해 있다. 밀레니얼 세대는 흔히 1981~1996년에 출생한 세대를 가리킨다. 우리 부모인 베이비부머는 고성장의 시기를 겪어왔다. 높은 성장의 시기라는 것은 그만큼 기회가 많은 시기라는 뜻이다. 통장에 꼬박꼬박 적금만 해도 집을 마련할 수 있는 종잣돈이 됐고, 열심히 일하면 성공의 기회가 찾아오는 그런 시기였다. 우리 부모님이 '돈을 모아라', '열심히 일해야 한다'고 말하는 건 그래서 당연하다.

                                             


통계개발원의 조사에 따르면, 베이비붐 세대의 평균 자녀 수는 두 명이다. 같은 밀레니얼로 묶였지만, 1980년대에 주로 속할 30대 첫째와 1990년대 이후에 태어난 20대 둘째 사이에는 큰 차이가 있다. 고성장에서 저성장으로 내려앉던 시기, 첫째는 베이비부머 부모의 가치관을 줄곧 들으며 자라왔고 부모에게 배운 가치를 실천해야 한다는 책임이 있었다. 그러나 저성장 기조가 자리를 잡고 취업난을 일상으로 받아들이게 된 시기에 자란 둘째에게는 그 영향이 덜했다. 부모는 시대에 대한 이해가 싹텄고, 덕분에 둘째는 부모 세대의 가치에서 비교적 자유로웠다. 서로 다른 삶의 태도를 갖고 있는 첫째와 둘째는 이제 함께 일하는 동료가 됐다. 첫째는 사회에 발을 들인 둘째를 바라보며 자유로움에 대한 부러움과 자신과 다른 가치로 인한 껄끄러움을 느낀다. 이 껄끄러움과 부러움이 첫째를 신꼰대로 만들고 있다.


사회에서 만난 90년대생들을 가장 잘 표현해줄 수 있는 말은 '자유롭다'는 것이다. 그들은 기존 경제관념으로부터 자유롭고, 성공의 압박으로부터 자유롭다. 그리고 타인의 시선으로부터 자유롭다. 워라밸, 미닝아웃, 탈코르셋, 소확행, 홧김비용 등등의 신조어들이 모두 그들의 자유로운 삶의 태도를 담고 있다. '자유를 추구해서 나쁠 것이 대체 무엇일까.' 한 켠에는 부러운 마음을, 다른 한 켠에는 새로운 트렌드에서 밀리고 싶지 않은 마음을 안고 이러한 삶의 태도를 따라가 보려고 애쓰기도 했다.


그러나 이러한 태도를 지속적으로 마주하다 보니 자꾸 마음속에 걸리는 게 생긴다. 욱욱 하고싶은 말들이 올라온다. '꼰밍아웃'을 했으니 이제 그 말들을 마음껏 내질러보려 한다. 같은 시대를 경험하며 함께 살고 있는 첫째 언니 또는 누나의 이야기이다. 다른 시대에서 온 이전 꼰대들의 교과서 같은 말과는 다르다.

매거진의 이전글 1. 세상의 중심에서 '꼰대'를 외치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