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불행에 대해 이야기할 때 '희망이 없다'는 표현을 사용한다. 희망의 사전적 의미는 앞으로 잘 될 수 있는 가능성이다. 곧, 희망이 없다는 건 앞으로 잘 될 수 있는 가능성이 없다는 뜻이다. 성장과 기회가 줄어든 저성장 사회에서는 '내일은 나아질 것'이라는 희망이 사그라든다. 그래서 사람들은 꿈을 잃어가고 불행해진다.
특히 사회에 내딛는 첫발, 취업에서부터 실패를 경험한 20대는 더욱 내일에 대한 기대가 없다. 지난해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은 20대의 미래 안정성이 전 연령대 중 최하위였다고 발표했다. 높은 실업률뿐 아니라 주거 빈곤 등 불안정한 현실이 반영된 결과라고 해석했다.
희망이 흩어지며 마음의 고통을 호소하는 20대도 눈에 띄게 늘었다. 지난해 정신건강 질환으로 병원을 찾은 환자 중 20대가 가장 큰 폭으로 증가했다. 20대 환자는 전년 대비 13.5% 많아졌다. 이들이 가장 많이 앓는 정신질환 중 하나는 우울증이었다. 지난해 20대 우울증 환자는 2013년보다 50% 가까이 폭증했는데, 같은 기간 2만명 이상 불어난 연령대는 20대가 유일했다.
지금의 20대는 희망이 없고 우울하다. 그런데 그다음 말이 참 희한하다. '그래서 불행하다'가 아니고 '그럼에도 행복하다'고 말한다. 미래 안정성이 최하위로 나왔던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의 조사에서 20대의 행복지수는 30대 다음으로 가장 높았다. 어떻게 20대는 같은 조사에서 미래는 불안정하지만 행복하다고 말할 수 있을까.
힌트는 일본에서 얻을 수 있다. 일본은 1990년대 거품경제가 꺼진 이후 '읽어버린 20년'이라고 부르는 장기 불황을 겪었다. 희망을 잃은 일본 청년들은 2014년, 지금 한국의 20대와 같이 '행복하다'고 했다. 일본 청년들이 행복한 이유는 희망이 없기 때문이었다. 일본 사회학자 후루이치 노리토시는 그의 저서 <절망의 나라의 행복한 젊은이들>에서 '오늘보다 내일이 더 나아질 것이라는 희망을 잃어서 행복하다'고 진단했다. 내일이 오늘보다 더 나아진다는 희망이 없을 때, 지금 이 순간이 가장 행복할 수밖에 없다.
'희망이 없다'는 것은 불행이다. 그러나 20대는 행복하다고 말한다. 내일에 대한 포기와 체념이 오늘을 가장 나은 날로 만들었고, 불행을 행복으로 바꿔 놓았다.
그나마 행복해서 다행인 걸까. 그렇지 않다. 행복해하기 때문에 더 불안하다. 포기하고 체념해서 행복하다면 희망이 생길 수 있는 확률은 계속 낮아질 것이기 때문이다. 불행해야 문제를 깨닫고 개선해 나갈 수 있다. 그래서 이런 상황에서 행복을 찾은 20대보다 '왜 나는 행복하지 않을까'라고 생각하는 20대를 더 응원한다. 적어도 포기하고 체념하지는 않았으니까 이들에게는 희망이 생길 수 있다.
'절망의 나라의 행복한 젊은이들'이었던 일본 청년들의 현재는 이전과 많이 달려졌다. 일본의 청년 실업률은 2010년까지만 해도 우리나라보다 높았다. 그러나 2017년 전세가 역전돼 우리나라 청년 실업률이 일본의 두 배를 넘어섰다.
'취직 빙하기'라고 불릴 정도로 취업난이 심각했던 일본은 최근 청년 실업률이 뚝 떨어졌다. 청년들이 일할 곳을 찾는 게 아니라, 일본 기업들이 구직자 모집에 경쟁을 벌이고 있는 상황이다. 일본에서 인력을 구하지 못하고 한국 청년을 데려가려는 일본 기업들도 눈에 띈다. 일본은 경기 회복에 주력하면서 꾸준히 청년 고용 정책을 펼쳐왔다. 덕분에 경기는 완만한 회복세를 보이고 있고, 일본 청년들은 더 좋은 고용 환경을 찾아 '골라서' 취업하고 있다.
한국과 일본의 희비가 엇갈린 주요 원인으로는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임금격차가 있다. 한국 중소기업의 평균 임금은 월 238만원으로 대기업 432만원의 55%에 그친다. 반면, 일본은 중소기업 임금이 대기업의 80%를 유지하고 있다. 대졸 초임의 경우 90%를 넘는다. 박상준 일본 와세다대 교수와 김남주·장근호 한국은행 부연구위원은 지난달 '한국과 일본의 청년실업 비교 분석 및 시사점' 보고서에서 “한국이 일본보다 청년 실업률이 높은 것은 양질의 일자리가 부족한 데다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 임금격차가 크기 때문"이라고 진단하기도 했다.
문제를 직시하고 해결에 나선 덕분에 20년간 늪에 빠져 있던 일본은 점점 살아나고 있다. 우리만 손 놓고 있을 수만은 없다. 불만족스러운 현실에도 행복해하면 문제를 해결할 수가 없다. 제대로 현실을 마주하고 목소리를 내야 한다. 지금이 불행하다고 생각하는 20대는 긴 여정일 수 있는 해결의 과정에 한 발자국을 먼저 내디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