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 홍림 호커센터
호커센터는 싱가포르의 개방형 푸드 코트입니다. 호커센터에서 만난 싱가포르를 글로 남깁니다.
531A Upper Cross Street, Singapore 051531
교환학생을 왜 하필 싱가포르로 갔냐는 물음을 받으면 영어와 중국어를 동시에 배우고 싶었다고 대답한다. 물론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싱가포르에 있으며 중국어를 사용할 기회가 거의 없었다. 있다면 가게에서 음식을 포장해갈 때 말하는 ‘다바오打包’ 가 유일했다.
떠나기 전 내 머릿속 싱가포르는 중국과 비슷했다. 가보니 틀린 생각은 아니었다. 생김새가 닮았으니 길 가는 사람 얼굴만 봐서는 중국인인지 싱가포리언인지 분간할 수가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오늘날 싱가포르 인구의 3/4가 중국계다. 오래전 하카(객가), 호키엔(복건성), 캔토니즈(광동성) 등 여러 계통의 중국인들이 건너와 형성한 나라가 싱가포르다.
덕분에 싱가포르 문화는 중국 문화와 떼놓기 힘들다. 싱가포리언 역시 중국식 이름을 짓고, 중국 명절을 쇤다. 특히 음식에 있어서 유사성이 두드러지는데, 돌이켜보면 그간 먹은 싱가포르 음식 대부분이 중국계 음식이었다. 인구 대다수가 중국계인 만큼 그들 음식이 종류에서나 양에서나 많을 수밖에 없다. 서점에서 구한 ‘싱가포리언 쿠킹’ 책을 보면 중국계 음식 레시피가 절반을 차지한다.
싱가포르에서 중국계 음식을 찾는다면 차이나타운에 가야 한다. 이 곳은 싱가포르 시내의 중심으로 홍림, 맥스웰, 차이나타운 푸드 콤플렉스 등 큰 규모의 호커센터가 세 군데나 있다. 그중 중국적인 색채가 가장 짙은 곳은 홍림 호커센터다. 홍림 호커센터는 차이나타운 한복판의 차이나타운 포인트라는 대형 몰 옆에 위치해있다. 간판에 적힌 문자나 들리는 말소리나, 이 부근은 영락없는 중국이다.
계단을 올라 들어선 홍림 호커센터 2층은 어수선하다. 기둥이 많고 꺾이는 면이 많아 실내가 한눈에 들지 않는다. 당연히 테이블들도 한 데 모여있지 않고 흩어져있다. 미로처럼 구부러진 이곳에서 싱가포리언들이 극찬해 마지않는 Ji Ji Wanton Noodle이라는 스톨을 찾았다. 장사가 얼마나 잘되는지, 당당히 스톨을 세 개나 붙여놓은 곳이 있다.
맛집은 조리도 빠르다. 주문하자마자 노란 Mee면에 짜장처럼 짙은 갈색의 소스가 얹어져 나온다. 한 젓가락 떠 넣으면 단맛과 짠맛이 엎치락뒤치락 반복되는데, 흔히 말하는 ‘초딩입맛’을 만족시킨다. 아삭아삭 씹히는 야채가 곁들여져 느끼하지 않다. 국물 없이 나오지만 옆에 만두가 뜬 국물이 따로 나와 퍽퍽하지 않게 먹을 수도 있다. 아주머니가 고명으로 차슈 고기를 듬뿍 얹어주신 덕에 은혜로운 한 끼 식사였다.
스톨에 사람이 없을 때면 주인들이 곧잘 나온다. 그들은 테이블에 앉아 끼리끼리 혹은 찾아오는 손님과 대화를 나눈다. 아주머니들이 모여 수다 떠는 모습은 영화 <쿵푸허슬>에 나오는 중국인 동네를 떠올리게 한다. 솟았다 꺼졌다 강한 억양의 중국어가 귀에 콕콕 박힌다. 소리만 들으면 언성을 높이며 싸우는 듯 하나 실은 다들 웃고 있다. 주구장창 중국어만 들리는 호커센터를 둘러보면, 그 모습이며 냄새며 중국이 따로 없다.
반년 남짓 잘 놀다 가면서 중국 같다는 인상이나 받아가는 내게 싱가포리언 친구들은 못마땅한 눈치다. 그들은 내게 싱가포르와 중국이 다를 수밖에 없는 이유들을 여러 차례 설명했다. 쌍둥이가 서로 닮았다는 말을 싫어하는 것과 비슷한 이치인가 보다. 어떤 선입견 때문일까, 미안하지만 난 여전히 싱가포르를 얘기하는데 중국을 빼놓을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