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 창이 빌리지 호커센터
호커센터는 싱가포르의 개방형 푸드 코트입니다. 호커센터에서 만난 싱가포르를 글로 남깁니다.
2 Changi Village Rd, Singapore 500002
맛집이란 개념은 세계 어딜 가나 있다. 그중 맛집에 얽힌 문화는 나라마다 다르다. 언젠가 맛 칼럼니스트 황교익 씨는 한국의 맛집이 거주 지역 중심이 아니며, 그렇기에 삼대천왕이니 뭐니 맛집이라고 찾아다니는 독특한 문화가 생겼다고 분석했다.
나도 맛집을 찾아다닌다. 싱가포르에서라고 예외는 아니었다. 맛집 정보를 구하기 위해 네이버가 아닌 현지인 블로그를 찾았고, 가끔 Burpple이라는 맛집 추천 어플을 이용하기도 했다. 무엇보다 싱가포리언들에게 직접 묻고 그들을 따라다녔다. 가까이 맛집 자문위원을 두고 지식과 지혜를 고루 전수받곤 했다.
싱가포리언을 따라다니며 겪은 바, 그들의 맛집 문화는 우리와 다르다. 오히려 일본인에 가깝다. 싱가포리언은 거주 지역 위주로 맛집을 떠올리는 경향이 있다. 현지 친구들에게 맛집을 물어보면 많이들 나고 자란 동네를 말해주었다.
좁은 땅에서 나고 자란 그들의 배경이 이와 무관하지 않아 보인다. 이동이 적은 싱가포리언의 생활 습관은 지역 중심의 맛집 문화에 기여한다. 가까이 두고 오래 찾으면 어디든 아끼게 되듯, 싱가포리언에게 어려서부터 다니던 가게는 자연스레 맛집으로 기억된다.
학기가 끝나 기숙사 방을 뺐다. 한국으로 떠나는 날까지 친구 Shannon의 집에서 며칠 신세 졌다. 아침에 일어나 하루 종일 함께 쏘다니다가 저녁에 들어가는 일상이 반복되었다. 아침에 부은 눈으로 짧게 인사드린 게 전부였는데, 어느 날 그의 아버지에게 식사 초대를 받았다. 호커센터를 찾아다니는(Hawker Hunting) 한국인이라는 친구의 소개에, 그의 아버지는 창이 빌리지 호커센터에 가자 권하셨다.
이곳은 Shannon이 꼽는 싱가포르 맛집이다. 어려서부터 아버지를 따라 형제들과 이곳을 다녔단다. 기숙사에 살 땐 거리가 멀어 가볼 일이 없던 창이 빌리지 호커센터로 향했다. International이라는 나시 르막 스톨을 가기로 했으나 줄이 길어 다른 스톨에서 먹었다. 생각보다 빠르게 포기하는 것 같아 놀라는 내게, Shannon의 아버지는 창이 빌리지 호커센터에선 플랜 B도 훌륭하다는 말을 빼놓지 않았다.
우리는 나시 르막을 주문했다. 아직도 하지 못한 말이지만, 그날 나시 르막은 인상 깊은 맛이 아니었다. 다만 흔하고 평범했다. 나시 르막을 잘 만드는 가게가 어디 있더라 몰래 떠올렸다. 돌아가는 길에 은근슬쩍 맛집을 추천해줄까 싶었지만, 내색하지 않았다. 내색은커녕 소스도 한 방울 남기지 않고 긁어먹었다. 빈 그릇을 본 Shannon부자는 입맛에 맞아서 다행이라며 좋아했다.
음식을 좋아하면 누구나와 친해질 수 있다. 나시 르막부터 시작해 우린 음식 이야기를 나눴다. 싱가포르에서 그간 찾은 음식들이 피자, 파스타가 아니어서 다행이었다. 느끼한 차쿼티아오를 먹고 디저트로 첸돌(말레이시아식 빙수)을 고르던 순간이 빛을 발했다. 아저씨는 일전에 한국인 동료가 싱가포르 음식을 못 먹었다며 현지인 입맛에 최적화된 나를 반겼다.
잘 먹고 나가던 길에 고렝 피상Goreng Pisang까지 얻어먹었다. 부자가 종종 찾는 디저트라고 했다. 처음 보는 바나나 튀김이었는데, 튀김옷 속 바나나는 노랗게 익어 당도가 절정에 달해 있었다. 극악무도한 칼로리를 자랑할 것 같았지만, 망설임 없이 해치웠다. 초대받은 자로서 예의를 지키기란 쉽지만은 않은 일이다.
돌아오는 길에도 아저씨는 싱가포르 맛집을 소개해주었다. 어디를 가봤냐부터 어디는 꼭 가보라는 말씀까지 잊지 않았다. 귀국이 가까울수록 후회가 남을까 부지런히 놀러 다녔다. 남은 며칠, 점심 저녁 가리지 않고 맛집을 전전했다. 덕분에 싱가포르 동쪽 맛집만큼은 빠삭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