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라는 어떤 우주

영화 <그녀, HER>

by 장현석

글 장현석, 그림 이지호



강아지와 연애할 수 있을까? 강아지가 반려, 곧 짝이라는 말은 흔하지만 진지하게 교제한다는 사람은 못 봤다. 염색체가 어떻다는 등의 생물학적 이유 때문만은 아니다. 인간은 집동물과 함께함에 있어 '내가 너를 먹여 살린다'는 거룩한 의존관계를 맺어왔다. 로맨스란 상대를 나와 같은 주인공으로 인정하는 과정의 다른 이름이다. 네 발의 해피와 두 발의 내가 이어지기는 아무래도 힘들어 보인다.


남을 주인공으로 대접하는 게 로맨스라니, 같은 인류끼리 만나기도 쉬운 일은 아니다. 나도 너도 일인칭 주인공 시점이기에 상대 마음은 늘 요원하다. 덕분에 서로 잘난 주인공의 두 우주는 섞이다가 충돌하고, 가련한 연인들은 언제나 오해하고 다툰다. 상대방에게 그만의 세계가 있고 그 안에 고유한 배경, 경험, 가치관 혹은 취향 따위가 무수히 들어차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면서 로맨스는 조금씩 앞으로 간다.


테오도르는 작고 외로운 그의 우주에 사람 대신 목소리를 초대한다. 하지만 그의 것인 줄만 알았던 목소리는 화를 내고 먼저 전화를 끊더니 이도 모자라 훌쩍 떠난다. 사라진 목소리를 그리워하며, 비로소 수염 난 어린아이는 열심히 노크하던 그녀의 우주를 위해 한 번도 문을 열지 못한 자신을 발견한다. 늦었지만 그렇게라도 앞으로 간다.


<안개, 이지호 作,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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