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토록 경건한 순간

공연 - <백건우와 야상곡>

by 장현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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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대 위로 우두커니 검은 피아노가 한 대 놓여있다. 조명 아래로 은빛 머리의 신사가 사뿐히 걸어온다. 짧게 박수에 응한 노년은 자리를 고쳐 앉고 연주를 시작한다. 넘치지도 모자라지도 않을, 알맞은 만남이었다.


낭만주의의 격정 대신 담백함으로 채운 무대였다. 쇼팽 야상곡을 따라 정갈한 풍이 도드라졌다. 정직한 타건에 끈적하거나 매끈한 기교는 어울리지 않았다. 노년의 연주자라는 인상 때문일까, 건반에는 세월의 피로와 그만큼의 장중함이 묻어났다.


몇 번의 미스터치가 있었다. 홀로 무대에 오른 검투사라면 건반을 잘못 누른 순간 무슨 생각을 할까. 찰나에 공포, 부끄러움 혹은 외로움 따위가 엄습할까. 어쨌거나 그에겐 누구에게 인정받거나, 꺼져가는 불씨를 되살리고자 애쓰는 모습이 조금도 없었다. 다만 지나온 세월만큼 달라진 스스로의 피아니즘을 고백하고 있었다. 오랫동안 피아노 앞을 지켜왔을 뒷모습은 무심하리만치 담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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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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