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 아베 코보 <모래의 여자>
남들 멀쩡히 대학 졸업하고 사회로 나갈 때 영화를 만들었다. 다큐멘터리를 찍었고, 몇의 단편 영화를 연출했고, 장편 영화도 연출했다. 일단 계속 해보라는 격려 정도는 받던 시절이다. 열정이 날이 갈수록 타올랐다.
그리고 은근슬쩍 회사원이 되었다. 게다가 본인 직업에 매우 만족하는 부류의 인간이 되었다. 문화와 예술이 사람들을 움직이는 순간에 서있고 싶었고 종종 그렇게 지낸다. 그래, 회사원이 나쁘지만은 않다니까. 실은 이게 내가 진짜 하고 싶은 일이었다고!
우리는 어딘가에 묻혀 눈 앞 세계의 의미를 찾는다. 기실 의미라는 것은 매몰된 순간에 떠오른다. 그게 영화감독의 꿈이든, 회사에서 주는 월급이든, 혹은 바슬거리는 모래든 우리 모두 어딘가에 파묻히고 싶다. 가장 갇혀있을수록 비로소 자유롭다는 건 얼마나 가련하고 우스운 일인가.
직장 선배의 권유로 이 책을 읽었다. 그는 매트릭스의 모피어스같은 표정으로 내게 소설을 권했다. 지금 나는 깊은 구덩이 속에 빠져 자유와 행복을 느끼고 있는 걸까? 오래전 엔딩 크레딧에 자랑스럽게 적은 내 이름이 낯설다.
2020.01.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