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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현석 Jan 02. 2023

#7 당차다

재즈를 위한 형용사 사전

Paul Chambers 폴 챔버스

<Bass On Top>


당차다 「형용사」 나이나 몸집에 비하여 마음가짐이나 하는 짓이 야무지고 올차다.



폴 챔버스 <Bass On Top> 1번 트랙 <Yesterdays> 도입은 낯선 활소리로 시작된다. 바이올린일리는 없고 첼로도 아닌 현악기라면, 베이스다. 커다란 악기가 부지런히 뜯길 땐 잘 들리지도 않았는데 운궁(bowing)으로 이만치 낮은 소리를 냈나 새삼스럽다. 사람도 악기도 따라 할 수 없는 저역대의 당당한 주장은 앨범을 관통하며 수그러들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앨범 타이틀 얘기를 빼놓을 수 없다. <Bass On Top>. 가장 아래 음역에서 다른 악기를 위한 버팀목이 되던 베이스가 정상에 서있단다. 재즈 신을 상대로 업어치기 한판승을 거둘만한 패기다. 익숙한 피아노-베이스-드럼에 기타 하나 더한 익숙한 쿼텟 편성이지만 폴 챔버스 베이스의, 베이스에 의한, 베이스를 위한 플레이 덕에 색다르다. 축구로 비유하자면 수비수인데 제가 내키면 최전방으로 나서서 공격을 이끄는 꼴이다. 지키는 역할도 잘만 하더니 달려 나가 골도 척척 넣는 폴 챔버스다.



22살 나는 군대에서 눈 치우고 있었는데 그는 <Bass On Top>을 만들었다. 3번 트랙 찰리 파커의 <Chasin’ The Bird>에서 묘기 드리블하듯 그루브를 빚던 그가 곧이어 동료들이 마음껏 뛰어놀게 워킹 베이스로 매끈한 판을 깔아주는 것을 듣노라면, 이놈이 괘씸하게 나이를 속였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이렇게 보니까 정말 어리다.


빠짐없이 모든 트랙에서 베이스를 위로 올려 선배 혹은 '꼰대'들을 멋쩍게 만들었을 그의 적극적인 기백이 돋보인다. 하지만 마일스 데이비스와 팀을 이루고 행크 존스, 아트 테일러, 케니 버렐 등 내로라하는 선배들과 블루노트에서 앨범을 내는 젊은이라면 건방지게 주장해도 한 수 접는 게 맞겠다. 단 한 방으로 어떤 거만함 혹은 당돌함이든 너끈히 책임질 수 있다는 뜻일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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