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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현석 Dec 28. 2022

#6 뜨끈하다

재즈를 위한 형용사 사전

Ella Fitzgerald and Louis Armstrong 엘라 피츠제럴드 & 루이 암스트롱

<Ella and Louis>


뜨끈-하다 「형용사」 꽤 뜨뜻하고 더운 느낌이 있다.



어느 사이트에서 읽은 글이다. 미국에서 저소득층 강력 범죄가 많은 까닭이 국밥의 부재란다. 큰 땅덩어리에 서민 음식 하나 없다는 게 아니라, 뜨끈한 국밥처럼 먹었을 때 응어리가 풀리는 느낌을 주는 음식이 없다는 이야기였다. 국밥에 대한 높은 충성도를 지닌 우리끼리 농담이지만 일리가 있다. 한 술 떠 넣기만 해도 위로가 되는 국밥은 종종 음식의 역할을 넘어선다.


미국인들에게 국밥은 없어도 뜨끈한 재즈는 있다. 엘라 피츠제럴드와 루이 암스트롱, 이름만 들어도 미소 짓게 되는 둘의 듀오 앨범 <Ella and Louis>다. 빼곡히 대중에게 사랑받는 미국 유행가들로 채워져 있다. 앨범 재킷만 보면 옆집 아주머니, 아저씨 같은 친근한 이들이지만 목소리만큼은 이웃에서 찾을 수 있는 수준이 아니다.



<Ella and Louis>에서 해석이 능수능란한 나머지 넘버들이 죄다 대화처럼 들린다. 엘라의 보컬은 넘실대지만  번에 쏟아붓지 않고 느리게 잠겨 들도록 배려한다. 그녀가 들려주는 이야기에 감화되는 것에는 게으른 희열이 있다. 볼륨 올려 루이의 구성진 노래 가락 굽이굽이 숨은 디테일을 발견하는 기쁨도 빠트릴  없다. 심지어 루이는 트럼펫으로도 말을   안다!



잠들지 못한 새벽 2번 트랙 <Isn’t This a Lovely Day>를 듣다 보면 도입부부터 엘라 때문에 싱숭생숭해져 비밀이라도 털어놔야 될 것 같다. 칼칼하게 밀려오는 루이 암스트롱의 목소리는 따끈한 국밥에 더해질 매운 양념처럼, 새로 켜를 더해 지루할 틈을 주지 않는다. 9번 <Cheek to Cheek>은 역사상 가장 많이 리메이크된 스탠더드 넘버 중 하나일 텐데, 엘라와 루이는 리듬과 톤만으로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완성도를 자랑한다. 함께 부른 10번 트랙 <The Nearness of You>는 든든한 친구를 닮았다. 대놓고 다가와 걱정하기보단 언제든 한 발 뒤에서 내 얘기를 들어줄 준비가 된 오랜 친구다.



엘라와 루이가 주는 편안함은 역설적으로 삶의 굴곡에서 우러난다. 푸근한 인상만큼 불우한 삶의 이력도 닮은 둘이다. 엘라는 태어나자마자 부모가 헤어졌으며 그녀 나이 열다섯에 하나 남은 어머니마저 세상을 떠나 고아원에 버려지기에 이른다. 루이는 어려서 아버지가 집을 떠나 홀로 남은 어머니가 매춘으로 돈을 벌어야 하는 지경이었다. <Ella and Louis>에서 중년의 보컬들은 조심스럽게 공감하며 익숙하게 위안을 눌러 담는다.



지쳤을 때 찾아 들을만한 앨범이 있다는 건 행운이다. 그리고 그 뜨끈한 음악이 오랫동안 질리지 않는 것도 역시 축복이다. 가만히 듣기만 해도 위로가 되는 어떤 재즈는 분명 음악의 역할을 넘어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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