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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현석 Jan 09. 2023

#8 간지럽다

재즈를 위한 형용사 사전

Stan Getz & Joao Gilberto 스탄 게츠 & 조앙 질베르토

<Getz/Gilberto>


간지럽다 「형용사」 무엇이 살에 닿아 가볍게 스칠 때처럼 견디기 어렵게 자리자리한 느낌이 있다.



작열하는 태양 아래 이국의 해변. 구릿빛 청춘들은 미소를 잔뜩 머금은 채 눈만 마주치면 웃음을 터뜨린다. 맨발은 파도 끝 따끈한 모래에 닿고 지평선 너머로부터 불어온 습한 바람이 볼을 스친다. 걷다 나른함에 지쳐 꺼내진 아이스크림처럼 녹아내릴 것 같은 게으른 오후. 스탄 게츠와 조앙 질베르토의 앨범 <Getz/Gilberto>가 연주되고 있다.


어떤 음악은 듣는 것만으로도 눈앞에 정경이 펼쳐진다.



보사노바는 50년대 말 60년대 초 브라질 음악에 미국의 쿨 재즈가 결합되어 생성된 장르다. 남미 정취를 품은 멜로디와 타기 쉬운 리듬, 쿨 재즈의 영향답게 공기 80 소리 20의 부드러운 연주 등이 특징이다. 잔잔히 흐르는 보사노바는 코끝에 닿아 연하게 흔들거리는 강아지풀처럼 간지럽다. 시원하게 재채기하기보단 몽롱하게 힘 빠질 때까지 내버려 두고 싶다. 슬그머니 짓게 되는 웃음이 흐뭇하다.



스탄 게츠와 조앙 질베르토의 1964년 합작 앨범은 제목도 단순하게 <Getz/Gilberto>다. 색소포니스트 스탄 게츠가 앞에 오는 까닭은 그가 먼저 이 앨범을 기타 연주자 조앙 질베르토에게 제안했기 때문일 것이다. 앞서 기타리스트 찰리 버드와 <Jazz Samba>라는 앨범으로 성공을 맛본 그는 가장 ‘브라질다운’ 가수 겸 기타리스트 조앙 질베르토와 작곡가 겸 피아니스트 안토니오 카를로스 조빔과 함께한다.


1962년작 <Jazz Samba>. 앨범 커버가 닮았다


<Getz/Gilberto>   들어도 귀에  들어오는 보사노바 트랙들로 차있다. 이별  함께하지 못하는 슬픔을 노래하는 3 트랙 <P’ra Machucar Meu Coração> 포르투갈어 가사를  모르고 들어도 좋다. 나지막이 웅얼거리는 질베르토의 목소리와 따뜻한 바람이 새어 나올  같은 스탄 게츠의 테너 색소폰 덕에 몸이 이완된다. 연인의 거절을 불협화음에 빗댄 4 트랙 <Desafinado> 문학적인 가사를   찾아보길 추천한다. 기타와 색소폰 소리 뒤편을 속삭이듯 채우는 조빔의 피아노가 사랑스럽다.


왼쪽부터 안토니오 카를로스 조빔, 스탄 게츠, 조앙 질베르토


앨범의 백미는 1번 트랙 <The Girl From Ipanema>다. 다듬어지지 않은 앳된 노래의 주인공은 조앙 질베르토의 부인 아스트루드 질베르토다. 남편이 영어를 못해 즉흥적으로 현장에 있던 그녀가 대신 녹음했다고 한다. 시간이 흘러 <The Girl From Ipanema>는 보사노바 대표곡이 되어 숱하게 리메이크되는데, 그럼에도 종종 이 버전을 찾게 된다. 무책임하게 노곤해지고 싶은 날이라면 그녀 목소리가 주는 인간미 넘치는 간지러움에 천천히 귀 기울여보자.


아스트루드 질베르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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