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즈를 위한 형용사 사전
Bill Evans Trio 빌 에반스 트리오
<Sunday at the Village Vanguard>
팽팽-하다 「형용사」 줄 따위가 늘어지지 않고 힘 있게 곧게 펴져서 튀기는 힘이 있다. / 둘의 힘이 서로 엇비슷하다.
가본 적 없는 뉴욕의 재즈 클럽을 떠올린다. 발걸음 뜸해진 깊은 밤, 소리를 안으로 삭이길 포기한 클럽 대문이 열리면 음악이 터지듯 새 나온다. 심드렁한 종업원은 이방인을 객석 아무 데나 앉히고 밝은 불빛 아래 선수들은 긴박하게 각자 파트를 이어간다. 어디서 왔는지 모를 관객들이 다 같이 숨죽여 무대를 응시하고 있다.
빌 에반스 트리오의 앨범 <Sunday at the Village Vanguard>는 타이틀 그대로 61년 6월 일요일 뉴욕 빌리지 뱅가드 클럽의 라이브 연주를 담았다. 실황이라서일까 피아니스트 빌 에반스, 베이시스트 스콧 라파로, 드러머 폴 모티안 셋이 주고받는 텐션은 유난히 당긴 고무줄처럼 팽팽하다. 현장에서 곡이 끝날 때마다 치는 듯 마는 듯 어색한 박수 소리는 당일 객석에 사람이 없어 급히 초대된 그들의 지인들 덕분이었다는 웃지 못할 후문이 전해진다.
앨범 <Sunday at the Village Vanguard>에서 돋보이는 긴장감은 낭만과 서정만큼 빌 에반스 트리오의 전형이다. 이는 리더 빌 에반스가 두 멤버를 본인을 위한 보조가 아닌 대등한 연주자로 인식했기 때문이다. 2번 트랙 <My Man’s Gone Now>가 시작되면 피아노는 폈다 오므렸다 반복하듯 곡 전체에 생기를 불어넣는다. 하지만 빌 에반스는 혼자 앞서는 대신 베이스에도, 드럼에도 삼각편대의 선봉을 맡김으로써 시시각각 반전을 꾀한다. 5번 트랙 <All of You> 역시 마찬가지다. 피아노가 선두에서 촉촉한 멜로디라인을 제시하지만 부르면 언제든 제 몫 이상을 해내는 베이스와 드럼 덕분에 예상하지 못한 데서 폭발력이 배가된다.
61년 6월 빌리지 뱅가드에서 셋이 무림 고수처럼 합을 주고받던 날, 숨죽인 나머지 제때 고쳐 앉지 못한 객석에선 덩달아 제때 떨어지지 못한 담뱃재들이 탁자를 어지럽혔을 게 분명하다. 티키타카 가쁜 호흡에 맞춰 공간이 연주로 꽉 차는 현장에 있었다면 누구라도 박수칠 타이밍을 놓쳤을 것이다. 트랙이 끝날 때마다 멋쩍게 머뭇거리는 갈채 소리가 이제야 이해가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