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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현석 Jan 24. 2023

#10 팽팽하다

재즈를 위한 형용사 사전

Bill Evans Trio 빌 에반스 트리오

<Sunday at the Village Vanguard>


팽팽-하다 「형용사」 줄 따위가 늘어지지 않고 힘 있게 곧게 펴져서 튀기는 힘이 있다. / 둘의 힘이 서로 엇비슷하다.



가본 적 없는 뉴욕의 재즈 클럽을 떠올린다. 발걸음 뜸해진 깊은 밤, 소리를 안으로 삭이길 포기한 클럽 대문이 열리면 음악이 터지듯 새 나온다. 심드렁한 종업원은 이방인을 객석 아무 데나 앉히고 밝은 불빛 아래 선수들은 긴박하게 각자 파트를 이어간다. 어디서 왔는지 모를 관객들이 다 같이 숨죽여 무대를 응시하고 있다.



빌 에반스 트리오의 앨범 <Sunday at the Village Vanguard>는 타이틀 그대로 61년 6월 일요일 뉴욕 빌리지 뱅가드 클럽의 라이브 연주를 담았다. 실황이라서일까 피아니스트 빌 에반스, 베이시스트 스콧 라파로, 드러머 폴 모티안 셋이 주고받는 텐션은 유난히 당긴 고무줄처럼 팽팽하다. 현장에서 곡이 끝날 때마다 치는 듯 마는 듯 어색한 박수 소리는 당일 객석에 사람이 없어 급히 초대된 그들의 지인들 덕분이었다는 웃지 못할 후문이 전해진다.



앨범 <Sunday at the Village Vanguard>에서 돋보이는 긴장감은 낭만과 서정만큼  에반스 트리오의 전형이다. 이는 리더  에반스가  멤버를 본인을 위한 보조가 아닌 대등한 연주자로 인식했기 때문이다. 2 트랙 <My Man’s Gone Now> 시작되면 피아노는 폈다 오므렸다 반복하듯  전체에 생기를 불어넣는다. 하지만  에반스는 혼자 앞서는 대신 베이스에도, 드럼에도 삼각편대의 선봉을 맡김으로써 시시각각 반전을 꾀한다. 5 트랙 <All of You> 역시 마찬가지다. 피아노가 선두에서 촉촉한 멜로디라인을 제시하지만 부르면 언제든   이상을 해내는 베이스와 드럼 덕분에 예상하지 못한 데서 폭발력이 배가된다.


왼쪽부터 음반 제작자 오린 킵뉴스, 베이시스트 스콧 라파로, 피아니스트 빌 에반스, 드러머 폴 모티안


61년 6월 빌리지 뱅가드에서 셋이 무림 고수처럼 합을 주고받던 날, 숨죽인 나머지 제때 고쳐 앉지 못한 객석에선 덩달아 제때 떨어지지 못한 담뱃재들이 탁자를 어지럽혔을 게 분명하다. 티키타카 가쁜 호흡에 맞춰 공간이 연주로 꽉 차는 현장에 있었다면 누구라도 박수칠 타이밍을 놓쳤을 것이다. 트랙이 끝날 때마다 멋쩍게 머뭇거리는 갈채 소리가 이제야 이해가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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