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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현석 Jan 29. 2023

#11 쫀득하다

재즈를 위한 형용사 사전

Kenny Burrell 케니 버렐

<Midnight Blue>


쫀득-하다 「형용사」 음식물 따위가 검질겨서 끈기 있고 졸깃하다.



태평양 건너로부터 흑인 인어공주가 찾아오는 걸 두고 대한민국에도 갑론을박이 이어졌다. 정치적 올바름을 위한 주제 중 인종은 우리나라보다 ‘멜팅 팟’ 미국에서 가장 처연한 사회 문제 중 하나다. 미국 대중문화의 화려함 이면에 인종 차별의 그림자가 곳곳에 남아있는 건 공공연한 비밀이다.


재즈는 20세기 초 미국 남부로 이동한 흑인 노예 이주민이 아프리카 리듬을 연주하는데 그 기원을 둔다. 그렇다면 재즈는 흑인 음악인가? 반은 맞고 반은 틀리다. 주요 리듬이나 블루스 등 스타일이 흑인 문화에 뿌리를 두지만, 결정적으로 이들이 들고 있던 악기는 유럽 백인의 것이었다. 또 편성이나 악곡 구성이 클래식의 영향을 받은 만큼 재즈가 흑인 음악이라고 단언할 수 없다.


그럼에도 대중문화 속 차별과 저항의 관점에서 재즈는 흑인 음악에 가깝다. 20세기 초중반 재즈 전성기 흑인 아티스트들에게 인종차별은 일상이었다. 위대한 아티스트 마일스 데이비스는 클럽 앞에서 백인 경찰에게 불손하다는 이유로 구타를 당했다. 니나 시몬, 빌리 홀리데이, 존 콜트레인, 찰스 밍거스 등 셀 수 없이 많은 이들은 아티스트인 동시에 인종차별에 반하는 사회 운동가였다. 짐 크로우법을 비롯한 구조적 억압이 용인되던 시절 재즈는 흑인 아티스트들의 역경과 슬픔을 먹고 커갔다.



재즈가 이렇게나 아픈 역사인데, 누군가의 연주를 두고 ‘흑인같다’ 라는 표현은 칭찬이 될 수 있을까. 성숙한 시민이라면 내뱉지 않을 말이 잠시 허락된다면, 선한 의도와 상찬의 뜻을 담아 사용하고 싶다.


백인 기타리스트 케니 버렐의 앨범 <Midnight Blue>는 흑인같다. 다시 한번 부박한 말솜씨에 양해를 구한다. 그가 뜯은 기타 소리는 물처럼 잔잔히 흐르는데 자세히 보면 수면 아래 물살이 요동친다. 변칙적으로 잽을 날리고 긴장감을 배가시키는 블루스 스타일이 쫄깃하고 쫀쫀하다. 이 쫀득함에 소울풀하다는 또 다른 표현이 있겠지만 혼이 담겨있다는 직역 따위로 설명되지 않는 농익은 ‘흑인 삘’이 있다. 감각적이고, 자극적이며 생명력으로 압도하는 동시에 전인적으로 다가온다고 하면, 케니 버렐의 스타일을 절반의 반쯤 설명한 것 같다.



앨범과 동명의 제목 4 트랙 <Midnight Blue> 명품 멜로디는 어디서 들어  것만 같은 기시감이 들게 한다. 기타 리프 뒤로 콩가 리듬이 만들어내는 탄탄한 생동감 덕분에 기타의 맑은 금속성 톤이 돋보인다. 조합을 놓고 보면 콩가만큼 그의 '' 찰떡같이 어울리는 재료도 없다. 6 트랙 <Gee Baby, Ain’t I Good To You> 블루스 기타는 철없는 아저씨처럼 능글맞고 익살스럽다. 연주만 듣고 그려지는 인물 모습은 앨범 커버의 젊은이와 사뭇 다르다.


앨범 <Midnight Blue>와 케니 버렐에 세련되지 않은 단어를 붙여 안타까울 뿐이다. 혹시 보다 올바른 표현이 있다면 누구라도 일러주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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