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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현석 Feb 06. 2023

#12 짙다

재즈를 위한 형용사 사전

Miles Davis 마일스 데이비스

<Kind of Blue>


짙다 「형용사」 빛깔을 나타내는 물질이 많이 들어 있어 보통 정도보다 빛깔이 강하다.



어떤 재즈는 밤에 어울린다. 어두운 밤이 주는 감상이랄 게 있다. 해가 지고 바깥의 한바탕 소동이 지나면 지친 몸은 스스로에 집중한다. 조금씩 자극을 덜어낼 때 오감은 모든 사소함을 받아들이기 위해 준비한다. 가끔 지나치게 예민해 필요 이상으로 증폭된 감성이 터지기도 한다. 새벽 감성이 괜한 말이 아니다.



마일스 데이비스의 앨범 <Kind of Blue>는 밤의 재즈다. 단 혼자 맞는 밤이어야 한다. 홀로 남아 고속도로를 달릴 때, 인적 드문 길을 익숙하게 걸을 때, 하루를 정리하고 내일을 기다리며 잠을 청할 때, 호리호리한 트럼펫 소리는 충분한 여백을 두고 밤하늘을 부드럽게 가로지른다. 이지적이며 절제된 연주가 깜깜한 풍경을 뒤로한 채 투명한 감각을 일깨운다.


(좌) 베이스의 폴 챔버스, 피아노를 치는 빌 에반스와 마일스 데이비스, (우) 존 콜트레인


1959년작 <Kind of Blue>의 성취는 크게 두 가지로 요약된다. 첫째로 섹스텟 멤버를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알토 색소폰의 캐논볼 애덜리, 테너 색소폰의 존 콜트레인, 피아노의 빌 에반스와 윈튼 켈리(곡 Freddie Freeloader에 참여했다), 베이스의 폴 챔버스와 드럼의 지미 콥까지 당대 올스타가 마일스 데이비스 아래 모였다. 실제로 실력만큼 엄청난 카리스마 덕분에 그는 평생을 최정상 연주자들과 함께한 것으로 유명하다.


빌 에반스와 마일스 데이비스


둘째는 클래식 음악에 정통한  에반스가 마일스 데이비스와 함께 개척한 모달 재즈다. 둘은 58 앨범 <Milestones>부터 새로운 시도를 꾀했고 <Kind of Blue>에서 선법(mode) 응용한 단출한 연주,  모달 재즈를 완성했다. 쉽게 말해 빠르게 나부끼는 현란한 코드 놀음으로부터 벗어나 스케일에 기반해 소리를 적게 담아내는 스타일을 일군 것이다. 앨범에서 마일스 데이비스가 보여주는 스타일이 그의 선배 찰리 파커와 사뭇 다르다는 것을   있다.



5번 트랙 <Flamenco Sketches>에서 빌 에반스가 그의 곡 <Peace Piece>에서 차용한 멜로디를 통해 전하는 아련함과 마일스 데이비스가 즉흥연주로 보여주는 고독함이 조화롭다. 단순하고 차분하게 전개되어 나른함은 배가된다. 3번 트랙 <Blue in Green> 은 5번 트랙보다 조금 더 회화적이다. 수줍게 대화하는 트럼펫과 피아노, 그리고 냉정과 열정 사이를 오가는 두 색소폰까지 모든 악기가 안개 자욱한 밤 각자 깜빡이는 가로등들처럼 애처롭다.


말 거는 듯한 도입부의 1번 트랙 <So What>에서 악기들끼리 수군거리는 소리를 집중해 들어보자. 음계를 통해 만들어진 화음이 주는, 독특한 모달 재즈의 정서를 느낄 수 있다. 사소함이 들리고 감각이 날카롭게 벼려진 깊은 밤에라야 가능한 일이다. 어떤 재즈는 밤에 어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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