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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현석 Feb 12. 2023

#13 알싸하다

재즈를 위한 형용사 사전

Charlie Parker & Dizzy Gillespie 찰리 파커 & 디지 길레스피

<Bird and Diz>


알싸-하다 「형용사」 매운맛이나 독한 냄새 따위로 코 속이나 혀끝이 알알하다.


 
재즈를 들으러 클럽을 찾는다. 이태원의 올댓재즈, 홍대  클럽 에반스, 교대의 디바 야누스  현장 연주를 품은 공간은 흐른 세월에도 여전하다. 하지만 재즈가 대중화되지 못한 만큼 '놀랄 만한' 라이브를 찾기 힘들다는 사실에 많은 팬들은 결국 스피커 앞으로 되돌아온다. 오감을 자극하는 라이브 연주에 대한 갈증도 여전하긴 마찬가지다.  
 
1940년대를 상징하는 비밥은 현장의 음악이다. 30년대 빅밴드를 중심으로 대중적인 스윙 재즈가 유행했지만 2 대전 이후 밴드 구성원이 줄며 소규모 편성이 일반화된다. 연주자들은 소수 정예로 각자 악기 고유의 가능성을 극대화해 비밥이라는 장르를 개척한다. 비밥 아티스트들은 수컷 공작새가 화려함으로 자웅을 겨루듯 갈고닦은 기교를 뽐내 클럽에서 살아남았다. 재즈가 댄스 음악을 넘어 연주자 테크닉과 표현 중심의 음악이  것이다.
 


태초에 찰리 파커가 비밥을 창조하시니라. 허를 찌르는 코드 진행과 좌중을 압도하는 속주로 비밥을 만들고 스스로 왕좌에 오른 그다. 평생 마약에 점철되어 피폐한 삶을 살았지만 강렬하고 밀도 높은 알토 색소폰 연주에는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천재적인 면모가 있다. 그의 곁에 트럼페터 디지 길레스피와 피아니스트 델로니우스 몽크 등 각자 분야의 정상에 선 연주자들이 함께했다. 40년대 비밥 전성기를 빛낸 3인방이다.
 

좌 찰리 파커, 우 디지 길레스피


1950년 앨범 <Bird and Diz>는 찰리 파커(Bird)와 디지 길레스피(Diz) 둘의 오랜 분열 이후 재결합을 알린 앨범이다. 또한 비밥 전성기가 끝나가던 시절인 만큼 이들의 익을 대로 익은 연주가 감상 포인트다. 빼곡하고 분답한 음표의 향연은 자칫 하나라도 틀리면 모든 게 무너질 만큼 아슬아슬하지만 단 한 번도 실패하지 않는다. '버드' 찰리 파커의 새처럼 자유로운 연주를 현장에서 보고 듣던 사람들이 누린 행운이 부럽다. 리코딩만 들어도 아드레날린을 자극하는 현란함과 아찔한 속도감이 있다.
 


<Bird and Diz>의 트랙들은 하나같이 짧은 대신 여러 번 들어야 톡 쏘는 맛을 제대로 알 수 있다. 4번 트랙 <Leap Frog>는 도약하기보다 살아남기 위해 온 힘을 다해 도망치는 개구리다. 손가락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빠른 찰리 파커의 색소폰과 맹렬히 귀에 때려 박는 디지 길레스피의 트럼펫이 개구리의 초조함을 대변한다고나 할까. 중간중간 텐션을 더하는 버디 리치의 드럼 브레이크는 보는 이들 마음의 열기까지 한껏 끌어올린다.


3번 트랙 <Relaxin’ With Lee>가 라이브로 연주되었다면 그 현장이 어렵지 않게 그려진다. 스포트라이트가 제일 먼저 찰리 파커를 향한다. 알토 색소폰이 여유롭게 시작을 알리고 나면 조명은 옆의 디지 길레스피로 넘어가 분주한 트럼펫 연주를 비춘다. 이내 다음 주자 델로니우스 몽크의 익살스러운 피아노 연주로 조명이 넘어갔다 마지막은 버디 리치의 드럼이다. 둥둥둥둥 킥 소리가 신호를 주듯 다른 연주자들의 준비 시간을 벌어주면, 무대 전체가 밝아지며 힘차게 엔딩을 향해 달려간다. 


우리 오랜만에 엄청나지 않았어? 연주를 마치고 땀을 닦으며 서로에 취해 말없이 으쓱대는 버드와 디지의 모습까지 눈에 보이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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