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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현석 Feb 19. 2023

#14 청량하다

재즈를 위한 형용사 사전

The Oscar Peterson Trio 오스카 피터슨 트리오

<We Get Requests>


청량-하다 「형용사」 인품이나 성격이 깨끗하고 선량하다. / 소리가 맑고 깨끗하다.


재즈 스탠더드 <The Days of Wine and Roses>는 결혼식 피로연에서 들어봤을 노래다. 술과 장미의 나날들이라는 시적인 제목은 즐거운 한때 술에 취해 여러 얼굴이 불콰해진 모습을 가리킨다. 이 곡의 넘치는 흥을 독창적으로 표현한 연주자로 피아니스트 오스카 피터슨을 꼽을 수 있다. 명랑한 연주는 반세기 넘게 꾸준히 사랑받아온 올 타임 클래식이다.


오스카 피터슨의 <The Days of Wine and Roses>는 1964년 앨범 <We Get Requests>에 수록되어 있다. 정확히는 트리오 앨범인데 베이스의 레이 브라운, 드럼의 에드 딕펜은 어디까지나 기본기에 충실한 연주로 주인공 오스카 피터슨을 지원한다. <We Get Requests>는 제목처럼 대중이 많이 신청하던 스탠더드 넘버를 엮은 일종의 히트곡 메들리다. 오스카 피터슨이 전성기를 함께한 음반사 버브 레코즈를 떠나며 프로듀서 노먼 그랜츠를 위해 마지막으로 선물한 앨범이라는 미담이 전해진다.


 
오스카 피터슨의 트레이드마크는 긍정 에너지다. 하얀 이를 드러내며 웃는 표정이 연주 스타일에까지 이어진다. 양손은 지칠 줄 모르는 아이들처럼 건반 위를 뛰노는데 특히 속주에서 깔끔한 타건과 경쾌한 스윙이 돋보인다. 6번 트랙 <You Look Good to Me>를 들어보라. 도입부의 얌전한 연주가 내숭이었음을 고백하듯 아르페지오는 마디를 거듭하며 조금씩 빨라진다. 이내 함께 소리를 키운 베이스와 드럼의 든든한 지원사격 아래 열 손가락이 기다렸다는 듯 힘찬 칼군무를 자랑한다.

 


한편 섬세한 표현력은 그의 인기가 속주와 에너지 때문이라고 단정 지을 수 없게 만든다. 본인이 싣고 온 힘에 경도되지 않으며 감정의 디테일을 풀어낼 땐 반전 매력이 있다. 3번 트랙 <My One and Only Love>는 일렁이는 속도감과 우아한 서정이 조화롭게 대비된다. 곡의 아우트로에서 서두르지 않되 부지런히, 게으르지 않되 여유롭게 문을 닫는 데서 피아니스트의 관록이 느껴진다.
 


처음 재즈 앨범을 선물한다면 아무래도 익숙한 피아노가 낫지 싶다. 그리고 역동과 낭만, 어느 것을 좋아할지 모르니 둘 다 고르게 담긴 오스카 피터슨 트리오의 <We Get Requests>가 좋겠다. 사람 좋은 웃음이 떠오르는 앨범을 듣고 한 번쯤 재즈에 빠지길 바라는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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