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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현석 Mar 05. 2023

#16 진보하다

재즈를 위한 형용사 사전

허비 행콕 Herbie Hancock

<Head Hunters>


진보-하다 「형용사」 역사 발전의 합법칙성에 따라 사회의 변화나 발전을 추구하는 경향이 있다.



무슨 장르라고 불러야 할지 의아한 노래들이 종종 있다. 오늘날이 아니어도 음악 장르 간 이종교배는 언제나 피할 수 없는 숙명이다. 재즈 역시 100년 넘는 시간 동안  홀로 성장했을 리 없다. 앞선 세대로부터 블루스와 소울, 가스펠을 물려받았고 록, 힙합과 교류하며 그 외연을 조금씩 넓혀온 장르가 바로 재즈다.


허비 행콕은 재즈라는 장르의 영토 확장에 혁혁한 공을 세운 위인들 중 한 명이다. 그의 업적을 말하기 위해선 마일스 데이비스가 등장해야 하는데, 그는 1963년 마일스 데이비스 두 번째 퀸텟의 멤버로 발탁되어 <Nefertiti>, <Sorcerer> 등 앨범에서 다수의 전위적이고 실험적인 곡을 써낸다. 일찍이 재즈와 록을 결합한 선지자 마일스 데이비스는 작곡 능력이 뛰어난 허비 행콕이 다음 세대의 기수가 될 것을 알았다는 듯, 재즈의 틀을 부수는 여러 프로젝트에 그를 앞세운다.



허비 행콕은 피아노 연주 실력 또한 일품이었는데 그랜드 피아노를 벗어나 키보드 앞에 앉을 때 그는 꽤 다른 페르소나를 보여주곤 했다. 1973년작 <Head Hunters>는 그의 작곡 역량과 전자음악 연주 실력이 담긴, 통통 튀는 멜로디와 펑키한 리듬으로 가득한 퓨전 재즈 명반이다. 오래된 리듬 앤 블루스 스타일을 지키되 그 위로 탄탄하고 매끈한 전자음악의 질감을 덧대 동물적 본능을 자극하는 이른바 새 시대의 재즈다.  



앨범 <Head Hunters>의 1번 트랙 <Chameleon>은 형형색색 터지는 일렉트로닉 사운드의 불꽃놀이다. 골조가 되어주는 베이스와 드럼 리프 위로 허비 행콕의 키보드와 베니 모핀의 관악기가 춤을 춘다. 전반부에 분주히 돌파구를 찾아 탈출하는 데 집중하지만, 후반부에 가면 안이든 밖이든 한 판 놀아나 보자며 원초적인 놀이굿을 펼친다. 2번 트랙 <Watermelon Man>에서 그는 1962년 앨범 <Takin’ Off>에 수록된 동명의 곡을 퓨전 재즈 스타일로 새롭게 선보인다. 과장 조금 보태 말하면 10년 간 허비 행콕이 재즈 신을 대표해 이룩한 음악적 진보가 여기에 응축되어 있다. 동시대 아티스트들에게 이정표가 되었을 전자 음악의 해석이 돋보이는 명곡이다.



모던 재즈에 익숙한 사람이 <Head Hunters> 듣고 선뜻 장르를 떠올리기 어려운 것도 당연하지만, 분명 재즈에는 다양한 스타일이 있다. 모르긴 몰라도 허비 행콕은 좋은 음악에 열심이었을  본인의 연주가 재즈라는  조금도 의심하지 않았을 것이다. 오늘날 재즈라는 이름 아래 많은 음악을 만나곤 한다. 아무렴, 허비 행콕에게 감사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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