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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현석 Mar 12. 2023

#17 미끄럽다

재즈를 위한 형용사 사전

Ornette Coleman 오넷 콜맨

<Free Jazz>


미끄럽다 「형용사」 거침없이 저절로 밀려 나갈 정도로 번드럽다.



영화 평론가 이동진은 문화에 있어서 허영의 필요성을 말했다. 허영이 없으면 감상에 있어 (어렵고 불편함을 감내해야 하는) 다음 단계로 도약할 수 없다는 것이다. 영화는 누구나 즐길 수 있지만 철학이 있는 영화를 이해하기 위해선 경험과 노력이 필요하다. 허영은 자기 마음속의 빈 곳을 스스로 의식하게 만들어 자연스레 그걸 채우려고 노력하게 만든다. 분명 음악에까지 닿는 통찰이다.
 
재즈를 연주하는데 악기들이 제각기 떠들어댄다면, 또 어떻게 전개되는지 도무지 모르겠다면 그 음악을 프리 재즈라고 불러도 좋다. 꽤나 희한한 장르다. 편성은 어수선하고 연주는 조성에 구애받지 않으며 악장 전개마저 종잡을 수 없다. 충동적으로 터지는 소리는 때론 신경질적으로 들린다.  
 


프리 재즈가 등장한 1960년대. 빅밴드 스윙, 비밥 그리고 쿨재즈와 하드밥까지 변화를 거듭하던 재즈는 막다른 길에 선다. 오래되어 익숙한 전개는 지루했고, 선법 중심의 모달 재즈는 단조로웠으며 코드를 이어 붙인 속주는 더 보여줄 게 없었다. 매번 종전의 틀을 깨며 한 단계씩 발전하던 재즈에게 갈 곳이 막막했다. 연주든 전개 구조든 하나쯤 개선하는 것으론 타개할 수 없는 난국이었다.
 


여기서 색소포니스트 오넷 콜맨이 등장한다. 그는 재즈의 총체적인 해체와 변태를 꾀했다. 앨범 <Free Jazz> 전통 재즈에 대한 반항으로 가득하다. 37분짜리 트랙 <Free Jazz> 트럼펫의  체리와 프레디 허버드, 베이시스트 찰리 헤이든, 클라리넷의 에릭 돌피  1 연주자들의 실력을 감상하기엔 지나치게 불친절하다. 다만 이들에겐 연주 음악을 넘어 시대에 던지는 지혜와 비전이 있다. 앨범 <Free Jazz> 재즈의 성장통을 알리며 전에 없던 새로운 길을 제시했다. 타성에 젖은 재즈를 조각내고 새로 이어 붙인 오넷 콜맨은 연주자, 작곡가가 아닌 개척자요 지도자였다.



어떤 음악은 쾌의 감정에 헌신하지 않는다. 순수하지만 그만큼 무례한 프리 재즈는 허영 없이 듣기 힘들다. 다만 성가신 앨범을 끝까지 들었다는 일종의 성취감과 느리게 쌓일 경험치가 우리를 더 높은 곳으로 데려갈 것이다. 그렇다고 꼭 억지로 들으란 말도 아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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