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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현석 Mar 20. 2023

#18 눅진하다

재즈를 위한 형용사 사전

Billie Holiday 빌리 홀리데이

<Lady in Satin>


눅진-하다 「형용사」 물기가 약간 있어 눅눅하면서 끈끈하다.


타인의 커다란 슬픔에 위안을 얻는 날이 있다. 자기 앞의 고민이 해결되지 않아도 내 아픔이 사소해진다는 데 당장의 안도가 있다. 세상에 힘든 이가 나뿐 아니라는 자명한 사실을 떠올리며 용기를 얻기도 한다. 소심하고 비겁한 자기 위로라고 해도 어쩔 수 없다. 비극에서 느끼는 카타르시스가 별 건가.


빌리 홀리데이의 58년작 <Lady in Satin>은 사랑 노래로 이루어진 발라드 앨범이다. 연인에 애정을 호소하는데 그 결이 낭만적이기보다는 쓸쓸하고 씁쓸하다. 전성기를 지나 탁해진 목소리와 힘에 부쳐 빛바랜 가창력이 그녀의 고백을 눅눅하게 만든다. 빌리 홀리데이는 사랑해 달라고 갈구하지 않는다. 대답을 기다리지 않는 생기 잃은 외침은 행복을 바라지 않는 듯도 하다.



<Lady in Satin> 오케스트라 편성 덕분에 오페라 내지는 뮤지컬을 떠올리게 한다. 무대 한가운데 홀로  빌리 홀리데이의 모습이 그려진다. 1 트랙 <I'm a Fool to Want You>에서 그녀는 자신을 내려놓은  연인만을 기다리는 비극의 주인공이다. 끈적하게 늘어지는 목소리가 비탄과 절규를 닮았다. 4 트랙 <I Get Along Without You Very Well> 당신 없어도 괜찮다고 말하지만, 이는 끝까지 두고  일이다. 아슬아슬하게 갈라지는 그녀 목소리가 울음을 참고 있기 때문은 아닌가 싶다.


트랙마다 분위기가 비슷해 구성이 지루한 감이 있지만, 슬픔을 한가득 담은 톤은 쉽게 질리지 않는다. 남모르게 위로받고 싶을  <Lady in Satin> 꺼내 듣는다. 가늠할 수도 느낄 수도 없는 그녀의 슬픔이 미안하고 감사할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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