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즈를 위한 형용사 사전
Miles Davis 마일스 데이비스
<'Round About Midnight>
얼근-하다 「형용사」 술에 취하여 정신이 조금 어렴풋하다.
알 만한 사람은 다 알겠지만 재즈와 술은 가깝다. 좋은 음악과 음식 간 궁합이 맞다는 말이 아니다. 취기는 대담함과 즉흥성 그리고 감수성을 돋우는데 이는 재즈의 성격과 직결된다. 술 한 잔 들어간 채 정교하고도 풍부한 재즈 발라드를 들으면 몇 잔 더 마신 마냥 빠르게 취할지도 모른다. 얼굴이 발그레하다면, 그리고 충분히 밤이 깊다면 <‘Round Midnight>이 흘러나오기에 알맞은 때다.
마일스 데이비스의 <‘Round Midnight>은 동명의 1956년작 앨범('Round About Midnight*)의 첫 트랙이다. 그의 버전은 앞서 델로니우스 몽크가 발표한 원곡보다 촉촉하고 진하다. 어두운 빗길을 밝히는 헤드라이트처럼 가늘고 길게 떨리는 도입부 트럼펫 소리에 집중하다 보면 음악에 취한다는 게 무슨 말인지 알 수 있을 것이다. 이윽고 색소포니스트 존 콜트레인이 이어받을 땐 곡 구석구석에 서린 '깊은 밤 감성'에 다시 한번 놀라게 된다. 두 관악기 주자의 절제하기보단 넉넉하게 밀어 넣는 정취 덕분에 정신이 아득하다.
검은 배경을 뒤로 붉게 물든 주인공이 돋보이는 앨범 커버는 취기 어린 밤을 떠올리게 한다. 그게 음악 때문이든 술 탓이든 마일스 데이비스는 얼큰하게 취한 듯 보인다. 두 손으로 불편하게 얼굴을 감싼 채 아래를 응시하며 사색에 잠겨있는데, 선글라스 뒤로도 특유의 고집스러움을 숨길 수 없다. 고독한 아티스트에겐 졸다 깨면 당장이라도 트럼펫으로 포효할 것 같은 야수성이 짙게 어려있다.
마일스 데이비스의 표현력이 정점에 달한 앨범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2번 트랙 <Ah-Leu-Cha>나 7번 트랙 <Two Bass Hit>에서 까끌까끌하고 탁한 비밥의 질감과, 3번 트랙 <All of You>의 말쑥함이 주는 명확한 대비는 마일스의 연주 덕분이다. 훌륭한 성취는 언제나 그렇듯 마일스 데이비스의 인복 덕이기도한데 앨범의 라인업 존 콜트레인, 피아니스트 레드 갈란드, 베이스의 폴 챔버스(그는 당시 스무 살이었다.), 드러머 필리 존 존스를 보면 그가 이번에도 얼마나 복 받은 리더였는지 쉽게 짐작할 수 있다.
과도한 음주를 권장할 생각은 없지만 매사에 적당할 필요도 없다. 한 번쯤은 술과 재즈의 믹솔로지에 흠뻑 취해도 좋다. 무엇이든 받아들일 수 있을 만큼 예민한 상태에서 귀로 들어오는 소리의 조각들은 평소보다 넓고 깊은 감흥을 불러일으킬 것이다. 당연히 밤이 깊을수록 그 효과는 배가된다. 자정 무렵이라면 더할 나위 없고.
* 델로니우스 몽크는 본인의 곡을 <'Round Midnight>이라는 이름으로 발표한 반면, 마일스 데이비스는 델로니우스 곡의 초창기 제목 <'Round About Midnight>을 본떠 앨범명을 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