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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현석 Apr 12. 2023

#19 얼근하다

재즈를 위한 형용사 사전

Miles Davis 마일스 데이비스

<'Round About Midnight>


얼근-하다 「형용사」 술에 취하여 정신이 조금 어렴풋하다.



알 만한 사람은 다 알겠지만 재즈와 술은 가깝다. 좋은 음악과 음식 간 궁합이 맞다는 말이 아니다. 취기는 대담함과 즉흥성 그리고 감수성을 돋우는데 이는 재즈의 성격과 직결된다. 술 한 잔 들어간 채 정교하고도 풍부한 재즈 발라드를 들으면 몇 잔 더 마신 마냥 빠르게 취할지도 모른다. 얼굴이 발그레하다면, 그리고 충분히 밤이 깊다면 <‘Round Midnight>이 흘러나오기에 알맞은 때다.


마일스 데이비스의 <‘Round Midnight> 동명의 1956년작 앨범('Round About Midnight*) 트랙이다. 그의 버전은 앞서 델로니우스 몽크가 발표한 원곡보다 촉촉하고 진하다. 어두운 빗길을 밝히는 헤드라이트처럼 가늘고 길게 떨리는 도입부 트럼펫 소리에 집중하다 보면 음악에 취한다는  무슨 말인지   있을 것이다. 이윽고 색소포니스트  콜트레인이 이어받을   구석구석에 서린 '깊은  감성' 다시 한번 놀라게 된다.  관악기 주자의 절제하기보단 넉넉하게 밀어 넣는 정취 덕분에 정신이 아득하다.



검은 배경을 뒤로 붉게 물든 주인공이 돋보이는 앨범 커버는 취기 어린 밤을 떠올리게 한다. 그게 음악 때문이든 술 탓이든 마일스 데이비스는 얼큰하게 취한 듯 보인다. 두 손으로 불편하게 얼굴을 감싼 채 아래를 응시하며 사색에 잠겨있는데, 선글라스 뒤로도 특유의 고집스러움을 숨길 수 없다. 고독한 아티스트에겐 졸다 깨면 당장이라도 트럼펫으로 포효할 것 같은 야수성이 짙게 어려있다.



마일스 데이비스의 표현력이 정점에 달한 앨범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2번 트랙 <Ah-Leu-Cha>나 7번 트랙 <Two Bass Hit>에서 까끌까끌하고 탁한 비밥의 질감과, 3번 트랙 <All of You>의 말쑥함이 주는 명확한 대비는 마일스의 연주 덕분이다. 훌륭한 성취는 언제나 그렇듯 마일스 데이비스의 인복 덕이기도한데 앨범의 라인업 존 콜트레인, 피아니스트 레드 갈란드, 베이스의 폴 챔버스(그는 당시 스무 살이었다.), 드러머 필리 존 존스를 보면 그가 이번에도 얼마나 복 받은 리더였는지 쉽게 짐작할 수 있다.



과도한 음주를 권장할 생각은 없지만 매사에 적당할 필요도 없다. 한 번쯤은 술과 재즈의 믹솔로지에 흠뻑 취해도 좋다. 무엇이든 받아들일 수 있을 만큼 예민한 상태에서 귀로 들어오는 소리의 조각들은 평소보다 넓고 깊은 감흥을 불러일으킬 것이다. 당연히 밤이 깊을수록 그 효과는 배가된다. 자정 무렵이라면 더할 나위 없고.



*  델로니우스 몽크는 본인의 곡을 <'Round Midnight>이라는 이름으로 발표한 반면, 마일스 데이비스는 델로니우스 곡의 초창기 제목 <'Round About Midnight>을 본떠 앨범명을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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