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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현석 Apr 18. 2023

#20 고즈넉하다

재즈를 위한 형용사 사전

Charlie Haden & Pat Metheny 찰리 헤이든 & 팻 메스니

<Beyond the Missouri Sky>


고즈넉-하다 「형용사」 고요하고 아늑하다.



넓은 벌 동쪽 끝으로 옛이야기 지즐대는 실개천이 휘돌아 나가고.


가수 이동원과 테너 박인수가 부른 정지용의 ‘향수’ 첫 소절에 눈물이 그렁거린다. 고향은 언제나 몰래 떠나온 마냥 그리운 이름이요, 찾으면 엄마 품처럼 익숙하게 나를 누그러트릴 그곳이다. 아득한 고향 하늘 아래 홀로 남을 땐 오래전 유년의 나를 만난다. 넉넉한 산 위로 해 넘어가고 별들이 하나둘 찾아오면 깨고 싶지 않을 나긋함이 몸을 덮는다.



찰리 헤이든과 팻 메스니의 <Beyond the Missouri Sky>는 고향을 오롯이 담은 앨범이다. 17살 차이 나는 둘이지만 모두 미주리주 출신으로, 고향의 대자연이 그들 음악적 교류와 영감의 원천이었다고 한다. 두 사람은 고향에 대한 애정과 목가적인 풍경에 대한 향수를 온화한 멜로디로 풀어낸다. 찰리 헤이든의 무게감 있는 단답형 베이스 연주와 팻 메스니의 몽글한 어쿠스틱 기타 아르페지오는 푸근한 미국 시골 정경을 점묘법으로 그린다.


(좌) 찰리 헤이든, (우) 팻 메스니


96년작 <Beyond the Missouri Sky>에 담긴 찰리 헤이든의 가족애는 묵직한 베이스처럼 울림을 준다. 첫 번째 <Waltz for Ruth>와 마지막 노래 <Spiritual>은 각각 아내와 아들을 위한 트랙이다. 또한 7번 트랙 컨트리곡 <The Precious Jewel>은 아버지에게, 8번 트랙 <He’s Gone Again>은 어머니에게 바치는 노래인데, 7번 트랙은 광활한 대지를 닮은 기상이 느껴지고 바로 이어지는 8번은 한적한 시골의 낭만이 도드라지는 게 듣는 재미다. 한편 이들 연주곡에 채 담기지 못한 노랫말이 라이너 노트에 적혀 그의 가족을 향한 사랑이 다시 한번 드러나기도 한다.  



팻 메스니 하면 떠오르는 현란하고 짜릿한 일렉 기타 연주 대신 고운 어쿠스틱 기타 연주가 있다.  2번 트랙 <Our Spanish Love Song>에서 팻 메스니는 찰리 헤이든 베이스의 톤에 맞춰 이베리아 반도의 끈적한 풍경화를 세필로 그린다. 엔니오 모리코네의 명곡 <Cinema Paradiso (Love Theme)> 역시 둘의 간결한 호흡으로 빚은 걸작이다. 서로 배려하는 악기 사이 노련한 대화는 한 사람의 독백처럼 들리기도 한다.



<Beyond the Missouri Sky> 고향과 자연을 닮은 앨범이다. 재즈는 네온사인 아래 어둑한 클럽에만 있지 않고  고인 처마 밑에, 모닥불 앞에도 있다. 인간 본연의 모습을 회복하는 찰리 헤이든과  메스니의 연주가 아늑하다. 듣는  만으로 너끈한 위로가 되는 시골 재즈다.


미주리주의 하늘이 이렇게 생겼다면, 그들은 엄청난 풍광을 본 게 틀림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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