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장현석 May 01. 2023

#22 말쑥하다

재즈를 위한 형용사 사전

Dexter Gordon 덱스터 고든

<GO!>


말쑥-하다 「형용사」 지저분함이 없이 말끔하고 깨끗하다.



오래전 떠난 아티스트가 남기고 간 사진이 음악을 듣는데 영향을 준다. 피아노 앞에 머리를 박고 골똘히 몰두하는 빌 에반스의 모습은 섬세하고 이지적인 그의 피아니즘을 닮았다. 부리부리한 눈으로 금방이라도 화낼 것 같은 마일스 데이비스는 확신에 찬 연주와 밴드에 대한 장악력을 떠올리게 한다. 보이는 게 다가 아니라지만 이미지와 아티스트의 연주가 단박에 연결되는 순간들이 종종 있다.



덱스터 고든은 190이 넘는 훤칠한 키에 호감형 외모를 지닌 테너 색소포니스트다. 늘 머리를 단정하게 빗고 정장을 차려입은 채 매너 좋게 연주한 것으로 유명하다. 생전 별명이 말보로맨이었을 정도로 담배를 즐겨 피웠다고 전해지는데, 무대 매너와 남성적인 테너 색소폰 그리고 담배로 미루어볼 때 제법 호탕한 인물이 아니었을까 싶다. 쾌남처럼 미소 짓는 그의 사진을 보면 팬 서비스가 몸에 밴 할리우드 스타가 떠오른다. (실제로 그는 재즈 피아니스트 버드 파웰 역할에 캐스팅되어 영화 <Round Midnight>의 주연 배우로 활동하기도 했다.)



1962년 덱스터 고든의 앨범 <GO!>는 기품 있는 긍정 에너지로 가득하다. 하드밥의 공격적인 스윙감을 뽐내면서도 대중 취향을 만족시키는 멜로디를 놓치지 않는데, 그가 과거 몸담았던 밴드의 리더인 빌리 엑스타인의 곡 <Second Balcony Jump>이 대표적이다. 예술성과 대중성을 단번에 잡은 트랙에서 덱스터 고든과 피아니스트 소니 클라크가 주고받는 시원시원한 솔로가 경쾌하기 이를 데 없다.


라틴 풍의 업템포 트랙 <Love for Sale>에서 빌리 히긴스의 가뿐한 드럼 위로 쭉쭉 뻗는 피아노와 색소폰 솔로 역시 일품이다. 물 흐르듯이 전개되는 솔로 라인은 난해하기보단 호방하고 직선적인 덕분에 언제까지고 따라갈 수 있을 정도다. 한편 2번 발라드 트랙 <I Guess I’ll Hang My Tears Out to Dry>에서 수줍은 고백처럼 옅게 번지는 색소폰 소리가 덱스터 고든의 건장한 이미지에 더해질 땐, 일종의 이율배반적인 매력이 연주의 진정성을 더해준다.



CD든 바이닐이든 피지컬 앨범을 두고 이미지를 훑는 재미가 있다. 전면의 덱스터 고든 이름에서 온 듯한 제목 <GO!>가 그럴싸하다. 쿼텟의 당당하고 진취적인 스타일이 짧은 단어에 압축되어 있다. 앨범을 다 들은 후에 다시 한번 후면의 사진을 보며 말끔한 신사와 호방한 연주를 머리에 새긴다. 덱스터 고든이라는 이름이 붙은 다른 앨범을 만날 때 재미가 더해지길 바란다. 무엇보다 한참 후 여기 트랙을 다시 찾아들을 날이 기대된다.


사진작가 허먼 레너드 Herman Leonard가 촬영한 덱스터 고든


매거진의 이전글 #21 감미롭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