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즈를 위한 형용사 사전
Bill Evans & Jim Hall 빌 에반스 & 짐 홀
<Undercurrent>
간명-하다 「형용사」 간단하고 분명하다.
아마도 그 본격적인 시작은 애플의 등장이 아니었을까 싶은데, 미니멀리즘이 여전히 유행이다. 쉽게 끝나지는 않을 것 같다. 무엇이든 빠르고 넘치는 시대가 불러일으킨 피로에 저항하듯 단순함의 미학이 꾸준히 인기다. 물론 재즈에도 미니멀리즘의 무드가 있다. 그리고 그 왕위 어딘가 빌 에반스와 짐 홀이 나란히 앉아있다.
앨범 <Undercurrent>에는 피아니스트 빌 에반스와 기타리스트 짐 홀이 전부다. 쿼텟 이상의 구성에 익숙하다면 단둘이 만든 음악이 아무래도 허전하게 들릴 수 있다. 특히나 내향적인 스타일의 둘은 더해도 모자랄 판에 실컷 비우고 덜어낸 채 합을 맞춘다. 피아노와 기타는 거미가 실을 짜내듯 연약한 멜로디를 부지런히 엮는다. 서로에 대한 신뢰를 바탕으로 효율적으로 뽑아진 리듬과 멜로디들이 촘촘하다. 금방이라도 끊어질 것처럼 나풀거리는 실들이었는데 어느덧 튼튼한 구조물이 완성되는 건 마법에 가깝다.
<Undercurrent>라는 이름처럼 앨범 커버에 물살에 빠진 여인이 등장하는데 섬뜩한 동시에 동화적인 상상을 불러일으킨다. 앨범 이미지를 단적으로 드러내는 곡을 꼽으라면 3번 트랙 <Dream Gypsy>다. 절제된 연주로 차갑고 비정하게 느껴지지만 그 안에 다가가고 싶은 맑고 순수한 톤이 살아있다. 4번 트랙 <Romain>은 홀로 침잠하는 여인의 이미지처럼 쓸쓸한 가운데 몽환적인 낭만을 피워낸다. 기타의 상냥한 톤이 흑백으로 남은 추억을 따뜻하게 덥힌다. 마지막으로 6번 트랙 <Darn that Dream>에서 연정을 품은 채 망설이는 빌 에반스의 피아노는 영화 <밀양>의 송강호를 닮았다. 기타는 우두커니 그림자가 되어주는 피아노 덕분에 본인 색으로 멜로디의 빛을 발한다.
빌 에반스는 트리오 멤버이자 애정하던 베이시스트 스콧 라파로를 1961년에 사고로 떠나보냈다. 비극적인 사건 이후 재즈 연주자로서 주춤하던 그에게 짐 홀이 찾아왔고, 이들은 1963년작 <Undercurrent>로 재기에 성공한다. 당시까지 흔치 않던 피아노와 기타 듀오라는 미니멀한 포맷으로 이들은 1966년작 <Intermodulation>까지 평단의 찬사를 받았다. 빌 에반스가 기타를 집었다면 짐 홀이 되지 않았을까 싶을 만큼 둘의 정서에 담긴 비슷한 결이 빼어난 호흡의 원동력이었을 것이다.
빌 에반스와 짐 홀의 청명한 연주가 편안한 나머지 몸에 힘이 빠지고 나른하다. 들릴 듯 말 듯해 집중하게 만드는 가녀린 멜로디 덕분에 노곤함은 배가된다. 앨범 <Undercurrent>는 피아노와 기타가 때때로 보여주는 연주 테크닉에도 결국 단출하게 둥글 거린 멜로디만이 남는다. 산뜻하고 신선한 감흥으로 다가오는 미니멀한 재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