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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동까스 Jul 13. 2022

눈 먼 자들의 도시 - 주제 사라마구

~2/16

2월 두번째 책은 노벨문학상 수상자 주제 사라마구의 책, 눈 먼 자들의 도시이다.

이 책을 읽겠다고 결심한 것은 아주 우연한 계기에 의해서다. 지난주 주말에 수아와 '마이시크릿덴'에 가서 책을 읽기로 했고, 그 전에 광화문 교보문고에 들러 읽을 책을 사자고 했던 것이다. 역사 코너를 돌아보며 볼만한 역사책이 있나 하고 훑어보았다. 재미는 있겠으나, 너무 두껍고 무거워 보였다. 그래, 역시 카페에서 읽기에는 소설이 제격이지. 영화로 만들어지기도 했고, 이름도 친숙한 눈 먼 자들의 도시를 집어들었다.


마이시크릿덴 은 망한 것 같았다. 건물에 4층 간판만 최근에 떼어낸 흔적이 있었다. 결국 발길을 돌려 근처 폴바셋으로 들어가, 책을 읽기 시작했다. 우연에 의해서 들어간 공간 치고는 꽤 인상적인 공간이었다. 폴바셋에서 읽을 때는 우리나라랑 중국이 컬링 예선을 할 때라, 보면서 같이 책을 읽었다. 경기 결과는, 패배였다.


이 책은 한 남자가 복잡한 교통의 한복판에서 차를 운전하다가, 신호를 기다리던 중 눈이 갑자기 멀어버리는 것으로 시작한다. 이 '백색 질병'은 사실 전염병이었고, 많은 사람들이 차례차례 감염되어 간다. 그 중에는 첫 번째로 눈이 멀어버린 남자가 찾아간 안과 병원의 의사, 그리고 의사의 아내도 포함되어 있다. 이 의사의 아내가 사실상 주인공인데, 모든 사람들이 눈이 멀어버렸으나 그녀의 눈만은 멀쩡했기 때문이다. 처음에 그들은 눈 먼 자들을 모아둔 정신 병원에서 같이 생활을 하나, 나중에는 결국 정신 병원을 지키던 군인들마저 눈이 멀어버려 밖으로 나와 생활하게 된다. 소설의 막바지에서, 백색 질병에 찾아올 때 그랬던 것처럼, 첫 번째로 눈이 멀어버린 남자는 아무 예고 없이 시력을 회복하게 된다. 그리고 차례차례 모든 사람들이 시력이 회복된다. 개인적으로 책을 읽어가면서 가장 궁금했던 것이, 이 생지옥을 어떻게 결론낼 것인가? 였는데, 시력이 사라질 때처럼 갑작스럽게 회복하는 것으로 마무리되어 약간 뻔하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소설의 중간에서 의사의 아내는, 이런 말을 한다. 모두가 눈이 멀어버린 이 상황에서, 눈이 멀쩡한 나조차도 눈이 먼 것과 같다. 눈이 보여도 다른 사람에게 눈이 보인다고 티를 낼 수가 없기 때문이었을까. 그러나 아내는 두 눈을 적극적으로 활용하여 병원 생활을 더욱 지옥으로 만들어버린 깡패들의 두목을 죽이고, 그들을 불로 태워 죽여버린다. 그렇다면 그녀는 '관계'의 측면에서 말한 것인가? 예를 들어, 모두가 돈이 한 푼도 없는 상황에서 나만 돈이 무한대로 있다면, 나는 내가 돈이 무한대로 있다는 것을 밝히기 어려울 것이다. 왜냐하면 이것은 그들의 마음 속에서 박탈감을 일으킬 것이기 때문이다. 박탈감은 나와 다른 사람 사이의 거리를 더욱 벌려 놓을 것이 분명하다. 만약에 소설에서 의사의 아내만 시력을 가진 채로 계속 전개되었다면 어땠을까? 아마도 눈 먼 자들과 속 깊이 공감할 수 있는 관계로 발전하지 못했을 것이다.


눈은 무엇을 보는가? 눈은 빛이 사물에 반사되어 망막으로 들어온 것을 시신경이 인식하여 '본다'. 이는 우리 몸이 사물을 인식하는 방법이다. 그러나, 우리는 빛을 반사시킬 수 있는 물질이 아닌 것들도 본다는 표현을 쓴다. 예컨대, 눈치를 '본다'. 상황을 '본다'. 마음을 '본다'. 어쩌면 눈의 본질은 '눈에 보이지 않는' 것들을 보는 것이 아닐까? 소설에도 나왔던 말 같은데, 우리는 두 눈을 크게 뜨고 있지만, 정말 수많은 것들을 알아차리지도 못하고 지나쳐버린다. 내 방 안에 있는 작은 행복, 소중한 인연이 될 수 있는 관계, 닥쳐오는 위험, 대박을 칠 수 있는 기회. 눈이 멀어버린 사람들은,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을 볼 수 있다면 진정 눈이 멀었다고 볼 수 없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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