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3.10-2022.3.14
자기 자신 앞에 놓인 죽음의 길을 똑똑히 바라보며 걸어가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그 죽음의 길에 자신이 가장 사랑하는 사람의 목숨도 내려놓고 가야 한다면? 폴과 챠니는 죽었다. 폴은 자신이 장님이 될 것을 알면서도 환영이 현실이 될 때까지 시간을 끌었다. 부하가 챠니의 죽음이 담긴 소식을 가져왔을 때도 이미 그 소식이 들려올 것을 알고 있었다. 왜 그는 피하지 않았을까?
이 소설은 6권의 책, 무려 44000페이지로 이루어진 대서사시이다. 지금은 1,2권을 읽었을 뿐이지만 그 방대한 세계관에 압도되어 책을 읽어나가고 있다. 그런데 약간 불만인 것은, 수수께끼같은 대사들이 참 많다는 것이다. 2권에서 던컨 아이다호의 육체를 가지고 재생된 골라 헤이트는, 틀레이렉스인들로부터 젠수니 철학자로 길러졌다고 한다. 젠수니 철학자들은 모든 말에 그 본질을 담으며, 쓸데없는 말을 낭비하지 않는다. 하지만 젠수니 철학자들 뿐만 아니라 프랭크 허버트도 젠수니 철학자들처럼 책을 쓰는 느낌이다. 그래서 때로는 플롯의 개연성이 잘 이해가지 않을 때도 있다.
폴이 자신과 챠니의 죽음을 피하지 않은 대목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예를 들어, 오테임의 집에서 비자즈는 여러차례 폴에게 빨리 나가자고 재촉했으나, 폴은 예지된 환영이 찾아올 때까지 시간을 끌었다. 그러다가 결국 암석 연소기에 당해 눈을 잃어버리고 말았다. 챠니가 아이를 낳으면 죽어버릴 것이란 것을 알면서도 그에 대한 어떠한 조치도 취하지 않았다. 왜 그랬을까? 이 개연성을 이해하기가 어려웠다. 이러한 의문들은 중간중간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대사에서도 느껴졌다. 예를 들어, 헤이트와 알리아의 대화는 알리아가 헤이트의 말을 들으며 느끼는 답답함만큼 내게도 답답하게 느껴졌다. 헤이트가 어떤 대답을 하고 있는지, 알리아는 왜 이런 반응을 보이는 것인지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들이 있었다. 나의 독해력 문제인지, 아니면 애초에 프랭크 허버트가 이런 수수께끼같은 문체를 선호하는지, 아니면 듄이라는 소설의 신비감에 어울리도록 수수께끼같은 문체를 사용한 것인지 모르겠으나, 어쨌든 결과적으로는 개연성이 부족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단적으로, 2권의 마지막 부분에 이룰란은 베네 게세리트들로부터 돌아서 폴의 아이들을 충성스럽게 돌보겠다고 한다. 하지만, 모든 반역자들을 처형했기 때문일까. 갑자기 돌변한 그녀의 태도가 잘 이해가지 않는다. 아이들도 폴의 유전자를 가지고 있으므로, 그들의 유전자를 베네 게세리트들에게 보내면 유전자 프로젝트를 계속 수행할 수 있는 것이 아닌가? 황제와 그의 정부가 죽고, 황비만이 남았으므로, 이룰란이 황제의 대리인으로서 통치자의 역할을 수행할 수 있는 것이 아닌가? 그녀가 한 선택에는 의문이 남는다.
개연성이 충분하지 않은 것은 차치하고, 최초의 의문으로 되돌아가보자. 왜 폴은 예정된 불행 속으로 걸어들어갔는가? 책에서는 '더 큰 폭력을 막기 위해'라고 설명하고 있기는 하다. 그런데 무엇이 더 큰 폭력이란 말인가? 폴 무앗딥은 그가 세운 거대한 제국의 황제이며, 이미 600억명 이상의 사람들의 목숨을 취했다. 그의 여동생 알리아는 우주 제국의 신민들이 복종하는 종교의 여신이며, 사랑하는 아내 챠니도 옆에 든든히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이 모든 것을 내버리고 예정된 암흑 속으로 걸어들어가다니. 물론 작중에서는 시간이 지날수록 환영에 잠식되어가는 불행한 절대자의 모습이 묘사되기는 했다. 그러나, 그렇다면 왜 챠니가 제안한 것처럼 모든 것을 벗어던지고 사막으로 둘이서 떠나지 않았단 말인가? 너무 무책임한 행동이 되어서일까. 아니면 그의 감시자들의 눈길에서 피할 수 없음을 알았기 때문일까.
헤이트가 던컨 아이다호로 각성하는 장면은 분명 이 책에서 가장 극적인 장면이었다. 그는 알리아와 연인 관계를 확립하였고, 앞으로의 스토리에서 굉장히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될 것 같다. 3권부터 6권까지 4권이나 남았는데, 왜 이렇게 읽기가 귀찮지... 1권과 2권은 느낌이 상당히 달랐음을 인정할 수 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