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찌어찌 시작된 봄처럼
난 불확실한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준비되지 않은 상황에서 무언가를 해야 하는 것도 싫어하고, 확신할 수 없는 상황을 견디는 것도 싫어하는 편이다.
소개팅이 시작되고나서부터 쭉 확신할 수 없는 상태에 놓여있었는데, 그런 애매함들이 크진 않지만 나름대로 스트레스처럼 다가오곤 했었다. 어쩌면 모든 만남이 다 그렇겠지만, 그래도 난 이번 경험을 통해 한 가지 확신신한 것이 있다.
"이제 소개팅 절대 안 해."
학교 수업으로 인해 시간이 애매했던 터라, 저녁 먹기 전 카페에서 먼저 만나기로 했다. 그 당시 '폴바셋'이라는 카페의 말차 관련된 디저트들이 내 sns에 가득 떠 있었다. 평소 오설록 녹차 스프레드를 좋아해서 그 게시글들을 보자마자 먹어야겠다고 생각했고, 소개팅을 핑계로 '먹고 싶은 거 먹어야겠다'라는 생각에 가자고 말하였다.
약속 시간, 약속 장소 앞에서 상대방을 만났다. 만나기 전부터 '오늘 어떻게 결판을 지어야 하나'라는 생각만 가득했던 나는, 먹고 싶은 거 먹어야겠다고 간 카페에서 무난한 말차 라떼만 시켜버렸다.
(사실 이때로 돌아간다 하더라도 부끄러워서 다른 디저트들은 못 시켰을 것 같다.)
2층으로 된 큰 카페였고, 트인 창 너머로 보이는 풍경이 예뻤다. 자리에 앉아 이런저런 얘기들도 나누고, 성격 유형 검사도 하고, 정적도 흘렀다.
그렇게 카페에 있다가 조금 이른 시간에 저녁을 먹으러 갔다. 생각했던 것보다 약간 시끄러운 공간이었고, 식당에 들어섰을 때 종업원이 꽤 큰 소리로 우리가 왔다고 알려서 민망했던 기억이 있다.
식당에선 연애 관련된 얘기들을 많이 나눴다. 친구와 연인 사이 허용되는 정도나, 연애 스타일이 어떤지, 어떤 데이트를 좋아하는지, 친구와 둘이서 인생 네 컷을 찍을 수 있는지 등의 얘기들을 나누었다.
밥을 다 먹고 근처를 잠깐 돌기로 했다. 그전에 화장실로 가 잠깐 정리하는 중에 친구한테서 어떻게 되어가고 있냐는 연락이 왔다. 나는 어쩌면 편한 마음으로 답장했다.
"오늘이 마지막일 것 같은데?"
이렇게 답장한 데에는, 나에게서 거절할 마음이 있었다기보다 상대방이 날 거절하겠지 라는 마음이 더 컸었다. 오히려 이렇게 생각하고 나니 마음이 더 편했던 것 같다.
밖을 나섰을 때, 상대방이 내게 먼저 언제 사진을 찍겠냐고 물었다. 사실 저녁 먹으면서 얘기할 때 상대방은 그냥 친구 사이에서는 둘이서 인생 네 컷을 안 찍을 것 같다고 얘기했기에 나랑은 안 찍을 줄 알았다. 소개팅을 진행하는 동안 처음으로 애매함이 약간의 확실함이 되었던 순간이었다.
뚝딱거리며 겨우 겨우 사진을 찍고 난 뒤, 우린 호수 주위를 걸으면서 얘기를 나눴다. 이런저런 얘기들을 나누며 걷다가 갑자기 걸음을 멈추며 내게 뒤를 돌아보라고 했다. 돌아본 곳에는 호수 중앙에서 음악과 함께 분수가 나오고 있었다.
잠시 벤치에 앉았다가 가자는 얘기에 '이때구나'싶었다.
음악을 들으며 분수도 보다가, 옆에 돌아다니는 오리도 보다가, 다른 얘기들도 꺼내다가, 내가 먼저 말을 꺼냈다.
"사람 오래 보는 편이라고 했잖아, 나는 3번 봤는데.. 어때?"
사실 내가 저렇게 말한 건 딱히 고백을 하려고 말한 건 아니었고, 진짜 단순하게 궁금했다. 3번 정도 본 나는 어떤 이미지인지, 어떤 느낌인지.
".. 어 내가 먼저 말하려고 했는데 먼저 말해서 놀랐어."
근데 고백처럼 들렸나 보다.
우린 각자의 마음을 말했고,
"그럼 우리 만나볼래?"
라는 상대방의 물음에, 난
"그래..!"
라고 답하였다.
어느덧 겨울이 다가오고 있다. 낯선 감정들과 기대들로 시작됐던 봄은 어느새, 설렘 가득했던 여름을 지나, 함께 있는 그 자체로 편안함을 느낄 수 있는 가을이 되었다.
어찌어찌 시작된 봄처럼,
어찌어찌 시작된 봄의 연애는 다가올 겨울을 기다리고 있고,
그렇게 우린
각각의 계절들을 뚜렷하게 채워 나가고 있는 중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