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omodossola
이 날은 그린델발트로 들어가는 날이었다. 제노바에서 밀라노, 도모도솔라, 스피츠 그리고 인터라켄을 거쳐가는 길이었는데 갈아타기도 여러 번이거니와 이동시간만 해도 7시간이 넘어간다. 단단히 마음을 먹고 전날 먹은 술을 깨는데 집중했다. 스위스로 가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었다. 차를 렌트해서 가거나, 기차를 타거나, 비행기를 타는 것. 한국에서는 둘이 기차도 안 타본 주제에 유럽에서는 낭만을 느끼겠답시고 호기롭게 기차행을 택한 것은 80쯤의 후회와 20쯤의 만족을 주었다. 다시 이탈리아-스위스를 간다면 피사에서 제네바로 가는 구간을 비행기로 대체할 것 같긴 하다.
많은 여행자들이 도모도솔라를 지나 스위스로 입성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가장 먼저 기차표를 끊어야 하는데 여행 계획 당시부터 몹시 고민했던 부분이다. 스위스라면 스위스 패스를 당연히 사야 하는데 가격이 참 만만치 않다. 도모도솔라를 지나면 스위스의 스피츠라는 역에 도착하게 된다. 보통은 이쯤에서 스위스 패스를 개시하지만 나는 다른 방법을 택했다.
이탈리아에서는 트렌이탈리아로 도모도솔라까지 이동했다. 첫 구간인 제노바-밀라노는 12.9유로로 IC열차라 좌석이 있었다. 이 구간은 정말 쾌적하고 좋았다. 밀라노에서 도모도솔라는 5.4유로로 레죠날열차라 좌석이 없었다. 정말 이 부분은 마의 구간이었다. 지저분하기도 했지만 내 기준 무서운 사람들이 많이 탔다. 예를 들어 흑인들이 피를 흘리면서 다닌다던가, 문신이 아주 많은 사람들이 몰려 탔다. 우리는 캐리어를 세 개 가지고 있었는데 나는 소위 말하는 '삥을 뜯길까'봐 너무 무서워 오들오들 떨었다. 메이트가 나중에 말하기를 자기도 사실 무서웠지만 당황하면 내가 더 겁을 먹을까 봐 의연한 척했다고 하더라.
도모도솔라에서 스위스로 가는 길에는 열차를 한번 갈아타야 하는데 시간이 아주 촉박한 것과, 1시간 30분의 텀이 있는 것을 선택할 수 있어서 후자를 택했다. 스위스 열차인 SBB는 도모도솔라에서 출발하여 스피츠-인터라켄으로 가는 열차인데 슈퍼세이버로 33.6프랑 결제하였다. 슈퍼세이버는 놓쳤을 경우 다시 끊어야 하기 때문에 트렌이탈리아가 지연될 경우 새로 티켓을 사야 하기에 겸사겸사 도모도솔라에서 점심을 먹기로 하였다.
아주 작은 도시인 도모도솔라는 이탈리아임에도 불구하고 시원시원한 날씨를 가지고 있었고, 스위스 프랑과 유로를 함께 받는 곳이 대부분이었다. 멀리 갈 수 없는 우리는 역 앞 핏제리아에서 점심을 먹기로 했다. 앤쵸비 피자와 오일 파스타, 그리고 모레티 맥주, 산펠레그리노 탄산수를 주문했다. 가게는 우리 외에도 잠시 들른 여행자들이 많았다.
여행 메이트는 아까 레죠날을 타고 오면서 내가 얼마나 긴장했었는지, 자신도 실은 무서웠다는 얘기를 하면서 목을 축였다. 맥주 한 모금에 긴장이 날아가는 매직.
무심한 듯 알찬 이탈리아에서의 마지막 식사를 하며 스위스 여행에서는 꼭 푹 쉬다 오겠노라 생각했다. 많이 쉴 수 있어 행복했고 잡다한 생각들로부터 해방되는 기쁨이 컸다.
역사의 반대편으로 와 기차를 기다리며 스위스는 또 어떻게 우리를 맞아줄지 많이 기대되었다. 몇 번의 갈아탐과 긴장을 지나면서 여행 메이트와 더 가까워지는 기분이 들었다. 친구 같은 사이를 유지한 우리 사이에서 서로의 보호자가 되어가는 과정을 지나가는 중이다. 현재도 진행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