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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남경아 Jan 27. 2024

03. 조승연 & 노홍철

나는 지적 허영심이 있다.

인정하는데 오래 걸렸으나 결핍을 감추려는 데서 발현한 것 같다.

그래도 외모나 화려한 생활에 대한 허영심이 아닌 게 다행이다.

상대보다 더 안다는 것을 드러내고 인정받는 데서 만족감을 얻는다.

학벌에 대한 열등감에서 온 것일까 생각했는데, 좀 더 거슬러 올라가야 할 것 같다.


내가 초등학교 때는 신학년 올라갈 때마다 학교에서 가정조사를 실시했다.

부모님 나이, 성함, 직업, 형제자매에 대한 정보 등을 적어 냈다.

그리고 지금 생각하면 개탄스러운 게 집이 자가인지 전세인지, 집에 오디오 시스템이 있는지 그리고 몇 cc 차량을 소유했는지까지 질문하는 선생님도 있었다.

그 안에는 부모님 학력 및 최종 학교를 쓰는 란이 있었는데, 부모님이 작성해 주셨다.

엄마는 고졸, 이름은 확실히 기억나지 않지만 xx여상이었고, 아빠는 대졸에 한양대학교라고 기재되어 있었다.

그런데 고등학교부터 내가 알 던 세상이 변했다.

오빠와 나에게 거짓말이 더 이상 통하지 않겠다고 생각하셨는지 아빠 정보가 바뀌었다.

고졸, 천안공고로.

나는 그 내용을 보고도 못 본 척 예전 정보가 맞다 믿기로 했다.

그래서 굳이 부모님께 왜 바뀌었는지 묻지 않았다.

그게 사는 데 큰 문제가 될 일은 없었다.

성실함을 미덕으로 생각하시고 한 직장에서 정년까지 근속하신 아빠덕에 대치동에서도 큰 부족함 없이 살아왔다.


그런데 중간에 바뀐 아빠의 학력을 모른척하고 나를 속이기로 해서인지 마음 한편에 찜찜함과 죄책감은 항상 웅크리고 있었던 것 같다.

그리고 내 학벌을 굳이 드러내지 않는 모습에서도 또 같은 패턴을 발견했다.

내 주변 초록세상에서 내 학벌은 맹숭맹숭한 주황색쯤 된다.

기본 SKY이거나 해외유학파 학부모들 사이에 건국대 출신이라는 것을 당당하게 밝히지 못했다.

굳이 출신학교를 말할 필요는 없겠으나 숙명여고 나왔다는 것을 스스럼없이 이야기하는 반면, 어느 대학인지는 신비의 영역으로 남겨두는 내가 못나 보인다.


내 목소리는 비교적 저음이고 말이 빠르지 않아 교양 있어 보인다는 말을 종종 듣는다.

그리고 나름 관심사가 다양해 띄엄띄엄 상식을 쌓은 덕인지 지적 허영심을 드러낼 기회만 되면 이례적인 용어를 잘 맞추거나 지식을 뽐낸다.

그러면 ‘Yul 엄마는 모르는 게 없네요’라는 말을 듣고는 부정도 긍정도 하지 않고 그런 평을 자기만족으로 간직한다.

물론 학력을 중심으로 돌아가는 초록이들 세상에서 건국대는 자랑스럽지 않은 타이틀인 것은 맞다.

그런데 그게 감춰야 할 만큼 부끄러운 것일까?

분명 아닌데, 나는 더 잘나 보이고 싶은 마음에 드러내지 않았다.

예전처럼 거짓말은 하지 않았다는 자기 안위와 함께.

대학 동문들 중에는 당당하고 자신감 넘치는 친구들이 많다.

그런데 나는 그러지 못했다.

대학 졸업반 때 같은 학교 친구들이 대기업, 금융권 공채에 붙었다는 소식이 하나 둘 들려오는데, 신입사원 면접에서 줄줄이 낙방하는 나를 보며 도대체 이유를 모르겠다며 답답해했다.

지금 보면 자신감도 확신도 없었던 내가 면접관들 눈에 보이지 않았을 리 없다.


지금 나를 당당하게 탈탈 털어보자라는 결심으로 글을 쓰며 이제야 그 결핍의 구렁텅이에서 나올 수 있겠다는 희망이 보인다.

이제는 학벌과 학력을 우선시하는 발언을 들어도 불편하거나 주눅 들지 않을 수 있겠다.

그건 그 사람 기준일 거고, 내 기준으로 나는 존경할 만한 사람이다.

더없이 평범한 학벌과 능력을 갖고 있지만, 글로벌 IT기업의 17년 차 마케터로, 건강한 육아를 목표로 하는 현명한 엄마로, 그리고 서로의 성장을 응원하고 지지하는 인생 동반자로의 삶을 이어가고 있기 때문이다.

평범한 내가 참 열심히 노력해 여기까지 왔다.  


내 결핍에서 시작된 지적 허영심덕에 내 인생 워너비는 다행히 내 성장에 영감을 줄 수 있는 이들이다.

조승연 작가와 이동진 평론가가 그들이다.

물론 지인이 아니니 미디어에서 비치는 모습이 내가 선망하는 모습의 전부다.

즐길 수 있는 일에 몰입하며 넓은 세상을 탐험하며 사는 게 부럽다.

조승연 작가는 직접 탐험과 간접 탐험을 병행한다면, 이동진 평론가는 간접 탐험의 최고봉에 있는 이 같다.

그리고 내가 부러워하는 이유는 그게 본인이 좋아서 하는 일이라는 거에 방점이 있다.


내 마케터로서의 커리어는 내일 죽어도 오늘 하고 싶을 정도로 원해서 하는 일이 아니다.

주어진 상황에서 최상의 조건을 선택하며 오다 보니 이 자리에 있을 뿐이다.

그나마 다행인 건 고삐 잡혀 일터에 나가는 소처럼 억지로 하는 일은 아니라는 거다.

일 자체보다는 내 성향에 잘 맞는 비교적 자유로운 분위기의 회사에 들어오며 출근이 즐거워졌다.

그래도 언젠가는 넓은 세상을 탐험하며 사는 내 워너비들처럼 살고 싶다.

책을 통해 내가 아는 세상을 위아래 사방으로 넓히고, 새로운 언어를 습득하며 사고의 폭을 넓히는 삶.


“교나(내 이름 경아를 발음하기 어려워하는 외국인들을 위해 영어로 Kyona라 했더니 한국 어르신들은 교나라 불러준다)는 언어 능력은 좀 없는 것 같아.”

상하이의 한국계 광고대행사에서 일한 지 4년쯤 됐을 때 상사로부터 들은 말이다.

‘니하오’ 한 마디밖에 못 하는 나를 채용하고, 첫 6개월은 오전에 중국어 수업을 듣고 오후에 출근하게 한 회사 상사였다.

입사 4년 후 나름 처음보다 많이 발전은 했지만 약 500명 이상이었던 전사 직원 중 서양인을 제외한 50여 명의 한국인, 그중 내가 중국어를 제일 못하는 것은 부인할 수 없었다.

그 상사의 말은 막연하게 생각하던 것을 현실로 만들어주는 주문 같았다.

그 이후 나는 나를 ‘언어에 재능 없는 애’로 정의해 버렸다.

그래도 재능이 없다고 피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는 게 그나마 다행이다.

해외에 거주했고 한국에 돌아와서는 글로벌 기업에 다니니 중국어와 영어를 사용해야 하는 상황이 많았다.

조승연 작가처럼 언어천재는 못 돼도 내가 살아가는 세상을 넓히고 사고를 확장할 수 있는 두 개의 언어가 더 생겼다는 것은 멋진 일이다.

 ‘언어에 재능 없는 애’도 꾸준히 매일 사용하면 여행지 맥도널드에서 주문하고 그룹투어 참여할 수 있을 정도는 될 수 있었다.

다양한 언어를 구사할 수 있다는 것도 부러웠지만, 뿐만 아니라 조승연 작가는 세상 사는 게 재미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커피 한 잔을 마셔도 그 역사와 배경, 각국의 커피 문화를 생각해 낼 수 있다면 세상이 얼마나 흥미진진할까?

그래서 Yul과의 이번 여행에 ‘뭘 좀 알고 가기’로 결심했다. 책 열 권에 다큐멘터리 두 편을 섭렵하고, Yul을 위해서도 어린이 서적 세 권을 샀다.

그중 두 권 겨우 읽혀서 떠났지만….


내가 추구하는 삶은 지적인 자유인이지만, Yul이 살았으면 하는 인생은 좀 더 가볍고 유쾌했으면 좋겠다.

진지함은 덜고 본능에 충실하지만 자신의 선택과 인생을 책임지는 그런 삶.

그래서 떠오른 이들은 노홍철과 기안 84다.

내 시각에서 그들은 주변 눈치 보지 않고 원하는 일에 충실하며, 그 일에 좀 더 가볍고 쉽게 뛰어드는 삶의 태도를 가진 이들이다.

이런저런 걱정으로 시작도 못하고 포기하는 진지한 사색가보다, Yul은 인생을 ‘진짜’ 살아가는 노홍철과 기안 84 같은 인물이 됐으면 한다.

스트레스 덜 받고 즐거운 인생을 살아가기를 원하는 부모의 마음이다.

하지만 내 아들 Yul은 타고난 기질이 꽤나 보수적이다.

새로운 음식에 도전하는 것을 또래 친구들보다 어려워하고 남들 시선을 유난히 신경 쓴다.

하루는 내가 엘리베이터에서 뉴진스의 슈퍼샤이 노래를 흥얼거리며 손을 위로 뻗어 춤을 추는데 엘리베이터 문이 열렸다.

기다리고 있던 사람들이 타고 나는 내리려는데 Yul이 내 손을 으스러져라 꼭 잡고 큰일 난 것 같은 표정을 지으며 빠른 걸음으로 주차장을 가로질러 갔다.

“춤은 내가 췄는데, 왜 네가 창피해하니?”

“아! 엄마!! 좀...!”

집에서는 속옷만 입고 얼굴 표정은 있는 대로 구겨가며 코믹댄스 추던 Yul에게 배신감마저 느낀다.

남의 시선이 두려운 건, 멋져 보이고 싶은 욕구 때문일까?

집에서는 한없이 까불이 Yul인데, Yul 친구 엄마들은 하나같이 Yul을 또래보다 어른스럽다 이야기한다.

그래서인지 더더욱 Yul이 좀 더 가볍고 쉽게 인생을 대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모르는 것을 부끄러워하지 않고 주어진 삶에 감사해하며, 너무 진지하지 않은 그런 인생 말이다.

그리고 Yul과의 여행을 통해 나는 내가 원하는 삶을 한 걸음씩 밟아가고 싶고, Yul에게는 Yul을 가두던 시선에서 벗어나 본능에 따라 즐기고, 그러는 중에 발생하는 크고 작은 문제를 해결하며 느끼는 쾌감을 체험하게 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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