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사한 현실 진단 글을 찾아 보니 점점 일반 국민들 사이에서 정치와 정치권에 대한 혐오가 강해지고 있는 느낌이다. 일차적인 원인은 당연히 제대로 된 정치를 펼치지 못하는 정치권에 있다. 팩트에 대한 아전인수격의 해석과 공격. 반대를 위한 반대. 뻔뻔한 억지 주장. 가공된 뉴스로 여론을 조작하고 선전 선동으로 대립과 갈등을 부추기는 정치권의 현재 수준은 참담함을 넘어서서 외면하고픈 마음이다.
하지만 사실 우리도 알고 있다. 그 나라 정치의 수준은 그 나라 국민의 수준을 반영한다는 것을. 그러므로 우리도 정치 수준으로부터 완전히 자유롭지는 않다.
오늘날의 정치 지형과 그를 보도하는 언론 환경이 많이 변한 것도 한 요인일 것이다. 신문, 방송, 잡지라는 올드한 매체는 이미 여론 조성이라는 역할을 상실한 지 오래고, 인터넷 찌라시 수준의 영세한 인터넷 뉴스매체와 유튜브에 등장하는 좌우 극단주의자들의 주장은 차마 표현하기 민망한 수준이다. 게다가 알고리즘이 맞춤형 편향뉴스를 초기화면에 고이 날라다 줘서 이 상황을 더 악화시키고 있다.
우리의 미래를 암담하게 여기는 지식인 또는 일반인들도 점점 늘어 가고 있다. 브런치에서만 주욱 훑어보아도 정치상황과 사회적 갈등을 개탄하는 글이 많다. 다들 현 상황을 안타까워하지만 타개할 방법은 보이지 않기에 암울한 미래를 점치고 있다.
이 지점에서 나는 조금 다르게 생각한다. 국뽕으로 정신승리를 하자는 이야기가 아니다.
좌우갈등, 젠더갈등, 세대갈등, 빈부갈등, 지역갈등, 노사갈등. 별별 갈등이 다 있는 나라이긴 하다. 하지만 이건 그만큼 우리가 민주화되었고 자신의 입장과 권리를 주장할 수 있게 되었다는 반증이다. 북한이나 중국, 러시아와 같은 나라를 생각해 보면 알 수 있다. 예전 유신시대나 군사독재시대에도 가능하지 않았다.
우리는 유례를 찾아보기 어려운 짧은 시간에 산업화를 이뤄내고 이어서 정치적 민주화를 이뤄낸 전 세계 유일한 민족, 유일한 국가이다. 그만큼 우리는 문제의 답을 잘 찾아내고 실현해 낼 줄 아는 민족이다.
조금 다르게 생각해 보자. 전쟁의 폐허에서 이만큼 잘 살고, 이만큼 훌륭한 정치체제를 만들어 냈다. 이만큼 올라오면서 그럼 다른 부작용이나 문제는 전혀 안 생겼어야 할까? 그게 가능하기나 할까? 발전도 변화이기 때문에 좋은 결과만큼 다른 부작용도 생기기 마련이다. 그것은 그것대로 고쳐 나가면 된다. 100% 좋은 변화와 발전만 우리가 해냈어야 한다고? 그런 역사는 세계 어디에도 없다.
20~30점의 낙제점을 받던 학생이 열심히 공부해서 단기간에 90점까지 올라왔다. 그럼 잘한 것 아닌가? 왜 100점 못 받냐고 혼내야 하는 시점과 상황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시간과 공간을 넓혀서 생각하면 나름 잘하고 있는 상황이다. 자동차, 반도체, 가전, 조선, 철강에 이어 배터리, 바이오, K-콘텐츠로 확장 발전해 가는 나라다.
완벽을 추구하는 것은 좋다. 하지만 어려운 여건에서 열심히 노력해서 90점 받아 온 아이에게 왜 100점 안 받아 왔냐고 혼내는 부모는 야박하고 야멸차다.
세계가 부러워하는 발전을 하고 있으면서도 스스로 자괴감과 불만에 빠진 나라, 바로 대한민국이다. 전교 10등 안에 들지만 전교 1등을 못했다고 열등감에 빠져 우울해하는 모양새다.
자기혐오를 좀 자제했으면 한다. 자기 반성과 성찰이야.... 집단으로서의 대한민국은 지금까지도 잘해 왔고, 앞으로도 망하기보다는 잘해 나갈 가능성이 더 크다. 우린 그 속에서 각자의 인생을 잘 살아가면 된다. 정치로 촉발되긴 했지만 우리 사회에 흐르는 과도한 부정적 기류와 기운이 확대 재생산되지 않기를 바란다.
정치가 정말 심각한 문제라고 국민이 판단하면 그 문제를 해결해 낼 거라고 믿는다. 지금은 일상에 미치는 정치적 영향력이 그렇게 크지 않고 술안주 정도로 여기면서 참을만하기 때문에 그냥 두고 볼 뿐이다. 진짜 문제라면 다 같이 어깨를 걸고서라도 갈아엎는 게, 대한민국의 역동성이고 국민성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