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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은돌 Jul 13. 2023

스타일리시한 문장

김훈, 무라카미 하루키, 김연수, 장강명, 김애란, 정유정

군더더기 없는 매끈한 문장은 그 자체로 매혹적이다. 글을 쓰기 시작하고 항상 부러워해 온 고민이다. 나는 언제 매끈한 나만의 스타일로 글을 쓰게 될까?


김훈의 직선적이고 남성적인 문장들은 그 자체로 힘이 있다. 지방을 싹 다 걷어내고 매끈한 근육만 남긴 보디빌더의 복근처럼 군더더기가 없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무심한 듯 조곤조곤 이야기하는 스타일은 나도 모르게 이야기에 스며들게 한다. 익숙한 듯하면서도 낯선 문장들. 정교하게 변주된 퓨전요리 느낌이다.


김연수의 문장은 깊고 웅숭하다. 그의 문장에서는 오랜 시간 깊은 사유의 끝에서 길어낸 통찰이 배어 있다. 오래된 묵은지와 잘 익은 젓갈의 냄새가 난다.


장강명은 재치 있고 반듯하며 열심히 사는 앞집 청년 같은 느낌이다. 그의 문장과 글의 구조에는 기본기가 잘 서 있다. 믿음이 가는 안정감 있는 손맛이라고 할까. 오랜 연습과 훈련으로 문장을 단정하게 배열해 낸다.


김애란은 재치 있고 발랄한 사촌 여동생과 같은 문장을 구사한다. 슬픈 상황 속에서도 항상 웃픈 방식으로 이야기를 풀어낸다. 그녀의 문장은 통통 튀는 청춘의 힘과 함께 청춘의 고달픔도 동시에 느끼게 만든다.


정유정서늘한 이야기를 정면으로 돌파해 내는 무서운 여자다. 그녀의 문장은 머뭇거림이 없다. 연쇄살인마의 무시무시한 칼처럼 단번에 잘라 버리듯 쓴다.


나도 언젠가는 나만의 스타일이 생겨날 것이다. 하지만 나는 문장의 스타일보다 문장의 내용이 먼저라고 생각한다. 내용은 곧 사유이고 사유는 곧 그 사람의 철학이고 세계관이고 됨됨이다.


생각이 잘 정리되면 문장이 잘 압축된다. 생각이 흐트러지고 산만해지면 문장도 지저분해지고 늘어진다. 군더더기 없이 매끈한 문장은 그 자체로 미려하고 때론 매혹적이다.


짧지만 강렬한 문장들. 긴 사유의 시간을 고압으로 압축한 글들을 보면 숨이 턱 막혀 올 때가 있다.


아직은 날이 파랗게 잘 벼려진 듯한 그런 문장을 만들어 내지 못한다. 진지충 꼰대의 허물을 완전히 벗지 못해서일까.


언젠가는 수류탄 같은 폭발력이 내장된 문장. 초고압으로 압축되어 정제된 글. 독자의 머릿속에서 빵빵 터지는 그런 글을 쓰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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