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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은돌 Oct 04. 2023

고수의 포스

포스쳐(Posture)와 애티튜드(Attitude)

무림에서는 칼을 파지하고 서 있는 자세만 보아도 고수인지 아닌지, 내공이 얼마나 되는지 척 알아본다고 한다. 무협지에 자주 등장하는 이야기다.


골프의 경우에는 티박스에 올라가서 셋업하고 어드레스하면서 드라이버를 잡고 서 있는 자세만 보아도 구력과 핸디캡을 대략 가늠할 수 있다.


강사의 경우에는 마이크를 잡고 무대에 서는 순간, 알아챌 수 있다. 안정된 하체와 부드러운 상체의 여유. 마이크를 부드럽게 쥐고 청중을 여유 있게 바라본다면 첫눈에 강사의 내공을 느낄 수 있다.


고수는 안으로 내공을 꽁꽁 숨겨 놓아도 겉으로 뿜어져 나오는 포스가 있다. 오랜 시간 갈고닦은 실력과 공력은 쉽게 감춰지지 않는다. 낭중지추(囊中之錐). 주머니 속의 송곳은 감추어도 뚫고 나오기 마련이다.


고수의 내공은 삶과 세상을 대하는 애티튜드(Attitude)이고 저절로 겉으로 드러난 포스가 포스쳐(Posture)다.




글쓰기의 경우에도 고수의 포스가 드러나는 경우가 있다. 대개는 첫 문장이다. 고수의 내공이 절로 뿜어져 나온다.


김훈 "칼의 노래"

버려진 섬마다 꽃이 피었다.


톨스토이 "안나 카레니나"

행복한 가정은 모두 비슷한 이유로 행복하지만 불행한 가정은 저마다의 이유로 불행하다.


프란츠 카프카 "변신"

어느 날 아침 그레고르 잠자는 불안한 꿈을 꾸다가 깨어보니 침대 속에서 흉측한 갑충으로 변해 있었다.  



첫 문장만 보아도 고수의 포스가 전해진다. 밀도 높은 문장, 압축된 암시. 전체 이야기에 대한 호기심을 불러 일으키는 매혹적인 인트로.




요즘 매일 글쓰기에 슬럼프가 왔는지도 모르겠다. 이제 세 달이 되어 간다. 글쓰기를 하면서 실력 향상이 더딘 탓에 나도 모르게 조바심이 난지도 모르겠다. 고수가 빨리되고 싶은 욕심이 생긴 걸까? 모든 고수는 절로 만들어지지 않았다. 정진과 축적의 시간이 필요하다는 걸 알면서도. 욕심이 일어난다.


긍정과 현명한 태도(Attitude)로 삶을 살아내고 꾸준히 도전하면서 정진해 갈 때 고수의 내공이 쌓인다. 축적된 내공은 저절로 고수의 자세(Posture)를 만들어 낸다. 조급하거나 서두를 일이 아니다. 천천히 바른 자세로 정진할 일이다. 마음을 다잡아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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