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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은돌 Jul 01. 2024

글쓰기, 드러냄과 숨김의 미학

글이란 걸, 도대체 왜 쓰는 걸까?

우리는 왜 글을 쓰는 걸까?


지식이나 정보 또는 재미를 주는 글도 아닌 이런 에세이류의 글을 왜 쓰고 있는 거며, 또 그걸 읽는 이유는 무엇일까?


꽤 오랜 기간 글쓰기에 집착하면서 항상 화두처럼 갖고 다닌 질문이다. 아직까지의 결론은 "잘 모르겠다"이다.


자신의 생각, 불만, 속내를 드러내고 타인들의 공감을 바라는 마음에서 글을 쓰는 걸까? 아니면 단지 나를 드러내고 과시하고픈 지적 허영?


그럼 우린 왜 자신의 생각에 대해 공감받고 인정받고자 할까? 자신의 생각에 100% 확신이 없고 불안하기 때문일까. 글 쓰는 게 스스로 외롭고 불안하다는 반증이고 이를 치유하기 위해 타인의 공감과 인정을 구하는 것이라면 이건 단지 문자와 글로 하는 인스타라고 봐야 하는 것, 아닐까?


그렇지 않다면 자신의 지적 경험, 정신적 사유의 탁월함을 과시하고 뽐내려는 우월감의 표현?


확실한 결론은 아직 모르지만 잠정적으로 내가 내린 결론은 글 쓰는 이유가 하나는 아니라는 점이다. 매우 복합적이고 다층적이다. 우리네 삶이 그러하듯.


때로 삶의 충만함을 느끼지만 한편으론 더 많이 세상살이의 고단함에 치이듯 글 쓰는 이유도 딱 하나로 깔끔하게 결론지을 수 없다. 내 생각을 드러내는 용기와 열정 그리고 부끄러움과 두려움이 공존하고 내 생각의 탁월함을 인정받고 싶은 욕망과 애써 태연한 척하고 싶은 이중적인 마음이 동시에 꿈틀거린다. 내가 글 쓰는 이유와 당신이 또는 그녀가 글 쓰는 이유는 대개 같지 않다.


힘든 삶을 견디는 내밀한 그 무언가의 이유로 글을 쓰는 사람도 있고, 글을 써야지 자신의 생각이 정리된다고 하는 사람도 있다. 자신의 사유로 지은 글이 몇몇 사람에게 공감을 받을 때 얻게 되는 조그마한 성취감을 맛보기 위해서인 사람도 있다. 저마다의 글 쓰는 이유는 모두 다르다.




자식을 사랑하는 어머니는 사랑과 모성애 그 자체지만 때론 엄한 훈육의 화신으로 변한다. 어머니를 이 두 가지 가운데 하나라고 할 수 있을까? 어머니는 이 둘 중 하나가 아니라 이 둘의 합이며 이를 넘어서는 그 무엇이다.


좋은 글은 자신의 생각, 경험, 지식, 관점을 잘 드러내고 효과적으로 주제와 연결시킨다. 그렇다고 모든 것을 다 드러내지는 않는다. 드러낼 필요도 없다. 모든 것을 다 드러내는 게, 솔직함이라고 우기는 건 무례한 방식이고 예의 없는 방식이다.


글쓰기는 자신을 드러냄과 동시에 어떤 면은 무의식적으로 때론 의도적으로 숨기거나 감춘다. 그래서 본질적으로 이중적이다.


글쓰기의 이중성은 글쓰기가 태생적으로 가진 원죄와 같은 그 무엇 - 자신의 생각을 드러내고 설득하고 싶지만 동시에 공감도 받고 인정도 받고 싶다는 욕망-이다. 프란츠 카프카는 유언으로 자신의 미발표 원고를 모두 불태워 달라고 부탁하였고, 법정스님은 자신의 글을 더 이상 출간하지 말라고 하셨다. 작가로서 스님으로서의 본분뿐 아니라 글쓰기에서도 나름 경지에 오르신 두 분이 마지막 순간 유언으로 한 이 말은 항상 내 목에 걸리는 가시처럼 글쓰기의 의미를 생각하게 만든다.


어쩌면 드러냄과 숨김의 숨바꼭질 속에서 만들어지는 글은 글 자체보다는 그 글이 만들어지는 숨바꼭질 과정 에서 글쓰는 이를 치유해 내는 마력이 있고 이 마력에 이끌린 사람들이 글쓰기의 세상으로 걸어 들어오는 건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나도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 건가?


글쓰기를 다시 시작하며 이번엔 조금 더 용기 있게 나를 드러내는 글을 써보고자 한다. 내가 모르는 것에 대해선 침묵하겠지만 내 생각이 맴돌고 머물다가 하고 싶은 이야기가 고이면 가차 없이 과감하게 글을 써보고자 한다. 무례하게 글 쓰는 사람들의 공해 속에서 예의를 지키며 침묵하며 사는데, 지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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