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 대학병원에 가면 심장, 간, 폐 등 각 신체부위별로 명의로 소문난 의사분들이 계신다. 진료와 수술을 받으려면 기본 6개월에서 1년은 줄을 서야 한다.
이 분들을 지역 읍면단위에 있는 지역 의료원으로 내려 보내면 어떻게 될까? 여전히 명의로 명성을 날릴까?
수술 잘하는 명의가 되려면 선진적인 병원 플랫폼, 첨단 의료기기, 숙련된 인턴, 레지와 간호사 등 여러 가지 인프라가 받쳐줘야 한다. 그런 게 없거나 미비한 시골 병원으로 내려가면? 당연히 혼자서 북 치고 장구 치면서 명의라는 명성을 유지하기 쉽지 않다. 몸이 부서져라 일해도 명의는 고사하고 제대로 된 수술도 쉽지 않다. 현대의학은 더구나 혼자 하는 게 별로 없다.
대기업 퇴직 임원들이 중소기업에 고문 또는 자문역으로 가는 경우가 많다. 중소기업에서는 이런 분들에게 대기업에서 쌓은 경험과 경륜 그리고 사회적 네트워크를 활용해서 사업 선진화를 이끌어 주리라 기대한다. 퇴직 임원도 자신의 경험을 전수한다는 마음으로 중소기업에 가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대부분은 해피엔딩이 아닌 새드 엔딩으로 끝나는 걸 많이 본다. 대기업임원이 특정 역할을 잘 수행할 수 있었던 것은 대기업 특유의 시스템과 인프라, 직원들의 수준과 역량이 뒷받침되었기 때문이다. 업무 분장과 전문화가 잘 조직화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이런 시스템이 불비하거나 거의 없고 임기응변이나 주먹구구식으로 돌아가는 중소기업에서 퇴직임원은 자신의 역량을 제대로 발휘하기 어렵다. 아니 발휘하려고 해도 할 수 없는 경우가 태반이다.
큰 기업이 무조건 좋지도 않고 중소기업이 무조건 나쁘지도 않다. 대기업은 대기업 나름의 강점과 약점이 있고 중소기업도 나름의 강점과 약점이 있다.
대개 조직의 의사결정이 느리고 관리체계가 너무 발달해 관료적으로 조직이 변해가는 대기업의 약점은 거꾸로 변화에 유연하고 의사결정이 빠른 중소기업의 강점이다. 서로 다른 환경 속에서 서로 다른 정반대인 강점과 약점을 갖고 있다.
무슨 이야기냐 하면 대기업 퇴직임원이 중소기업으로 가게 되면 의미 있는 역할을 수행하기 어렵다는 점이다. 특별히 이런 부분을 깨고 환골탈태할 만큼 영리하고 명석하신 분이라면 가능할 수도 있다. 그런데 퇴직임원이라 나이가 그렇게 변신하기엔.....
대기업과 중소기업을 모두 경험해본 젊은 친구들도 크게 다른 조직문화에 대해 이야기하며 적응이 어렵다고 이야기한다. 하물며 50대 중후반, 60대 초반이신 분들이야 말할 것도 없다.
50대 60대 재취업에 대한 이야기는 많다. 어느 글에서 대기업 퇴직하는 고급 인력을 중소기업에 배치해서 인력난도 해소하고 고령화 문제도 완화하자는 글을 보고 든 생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