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사 옳고 그름을 따지다 보니 자주 싸우고 결국 미워하는 마음도 생겨난다. 잘못된 것을 못 참으면 화를 내고 싸운다. 꾹꾹 억지로 참다 보면 울화통이 터지고 끝내는 폭발하기도 한다.
당신이 틀리고 내가 옳다는 생각이 있어야 싸움이 일어난다. 부부사이, 친구사이 그리고 회사에서. 정치의 장에서도 똑같다. 남편 이야기를 들으면 남편이 맞는 것 같고 아내 이야기를 들으면 아내가 맞는 것 같긴한데...
내가 옳다는 생각이 강하게 자리잡지 않으면 사실 싸울 수가 없다. 내가 옳은데 상대방이 아니라고 우기니 싸움이 일어난다. 내가 옳다는 생각을 하지 않고 열린 마음이라면 상대방과 생각이 다르다고 화가 나지 않는다. 상대방 생각이 더 맞아 보이면 상대방 생각에 동의하면 된다. 싸울 이유가 없다.
세상 모든 싸움, 분쟁의 근원은 내가 옳고 당신이 틀렸다는 지점에서 시작된다. 우크라이나의 민족/지역 갈등도, 이스라엘의 종교분쟁도 같은 이유다.
변하는 세상에서 맞고 틀린 영원한 그 무엇은 존재하지 않는다면? 맞고 틀리고를 초월해 버리면 사실 따지거나 싸울 이유가 없다. 항상 내 생각이 맞는다는 보장이 어디 있나...
싸울 이유가 없어니 용서할 그 무엇도 없다. 용서라는 것도 따지고 보면 내가 옳고 당신이 틀렸지만 이번엔 봐준다라는 생각이 깔려 있다. 그래서 용서가 뒤집히면 분노와 응징으로 폭주한다.
아이를 혼내는 것은 아이의 행동과 생각이 틀렸다는 전제에서 비롯된다. 부하직원을 혼내는 것은 부하직원의 행동과 말, 보고서가 잘못되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부부싸움을 하는 이유도 상대방이 잘못하고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이도, 직원도, 남편도 아내도 모두 각자 그때 그 상황에서 최선의 선택을 한 것이었다면? 그럼에도 결과가 나쁘게 나온 것뿐이라면? 그건 혼내거나 싸워야 하는 게, 아닐 수도 있다.
누가 누굴 용서할 것인가?
내가 옳다는 분별심을 내려놓으면 사실 용서할 것도 없어진다. 아집으로부터 벗어나는 길이다. 정신승리로 용서하는 것은 여전히 아집 속에서 억지로 참아 내며 어찌해 보려고 용쓰는 짓이다. 폭발하면 더 위험할 수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