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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은돌 Jul 18. 2024

사랑으론 부족해. 날 추앙해.

연미정은 구씨로부터 추앙을 받았을까?

"나의 해방일지"는 치열한 20대, 30대를 살아가는 세 남매의 이야기이다.


갑질하는 상사 밑에서 묵묵히 일을 하면서 서울과 경기도 집으로 출퇴근하는 연미정은 흔하게 보는 우리의 자화상이다.


장거리 출퇴근. 반복되는 피곤한 일상, 갑질하고 노골적으로 무시하고 언어폭력을 행사하는 상사. 동호회 가입을 강요하는 회사. 이래저래 조직에 치이는 삶. 하루하루 상처 입고 상처를 호호 불어가면서도 자신을 지키고 놓치지 않기 위해 애써는 삶이다. 그 와중에 변심한 남자친구는 돈까지 떼먹고 도망간다.


연미정. 애처롭고 부서지기 쉬운, 그래서 더 애정이 가는 캐릭터이다.


별말 없이 묵묵히 잡부생활을 하는 구 씨. 밤에는 깡소주를 몇 병씩 마시는 구 씨. 뭔가 비밀이 있어 보이는 구 씨.


연미정은 어느 날 구 씨에게 이렇게 고백한다.


"날 추앙해요. 난 한 번도 채워진 적이 없어. 개새끼, 개새끼... 내가 만났던 놈들은 다 개새끼. 그러니까 날 추앙해요. 가득 채워지게. 조금 있으면 겨울이에요. 겨울이 오면 살아 있는 건 아무것도 없어요. 그렇게 앉아서 보고 있을 것도 없어요. 공장에 일도 없고, 낮부터 마시면서 쓰레기 같은 기분 견디는 거, 지옥 같을 거예요. 당신은 무슨 일이든 해야 돼요. 난 한 번은 채워지고 싶어. 그러니까 날 추앙해요. 사랑으론 안 돼. 추앙해요.”


현대인들의 결핍은 물질적 부족보다는 정서적 결핍이고 마음의 허전함이다. 물론 아직도 가난과 경제적 불평등이 완전히 해결된 건 아니지만.


왜 연미정은 사랑으로 부족하다고 절규했을까? 왜 추앙해 달라고 구 씨에게 요구했을까? 사랑과 추앙은 무엇이 다를까?


현대인들에게 이젠 사랑은 저울질과 밀당과 교환의 대상이다. 빠르게 한계효용이 체감하는 그런 무엇이 되어 버렸다. 세상에 단 하나뿐인 그런 사랑이 아니고 언제든 바꾸고 갈아 끼울 수 있는 그런 소모품.


연미정은 진짜 사랑을 하려고 했는데 지금껏 만난 '개새끼'들은 그렇지 않았다는 것. 그래서 연미정은 추앙을 원했다.


자신을 조건 없이.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절대적으로 신봉하고 떠받드는 그런 걸, 받고 싶다는 것이다.


그래서 연미정은 구 씨의 추앙을 받게 되었을까? 궁금하긴 하다.


늦은 장마비가 철철 내린다. 추앙하고 추앙받고 싶은 그런 비오는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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