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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은돌 Jul 23. 2024

"누운 배" 리뷰

도크에 누운 채, 섞어간 배는 무엇을 상징할까?

이혁진 님의 "누운 배"를 최근에 읽었다. 중국에 세운 신생 한국 조선소에서 벌어지는 일을 정말 리얼하게 잘 그려낸 수작이었다. 직장생활과 조선소의 상황을 이렇게 세밀하고 정밀하게 그려낸 작품이 있었나 싶을 정도로 리얼리티가 탁월한 작품이었다.


신생 조선소에서 작업 중이던 배가 옆으로 기울더니 결국 넘어져 도크에 누워버리는 사고로 이야기는 시작된다.

이후 보험료를 받아내기 위한 보험사와의 험난한 협상과정이 자세히 다뤄지고, 이 즈음에 새로운 대표가 와서 회사를 혁신하기 위해 임직원을 벼랑 끝으로 밀어붙이기 시작한다. 허둥대고 발버둥 치는 임원들과 직원들.

그 와중에 누운 배를 다시 세워 수리해서 팔아 보려는 회장의 뜻에 따라 누운 배를 세우기 위한 지난한 작업을 하지만 건져낸 배의 수면에 잠겼던 부분은 한마디로 모두 "썩어 있었다." 어찌해 볼 엄두도 내지 못할 정도로.

혁신을 끌고 나가던 강골 신임 대표이사는 결국 옷을 벗고 회사를 나가게 되고 회사는 다시 예전의 그런 저런 모양새로 다시 회귀한다. 원칙을 강조하고 끝까지 밀어붙여서 문제를 해결하려던 그 대표이사는 무엇을 위해, 무엇을 한 것일까.



이 촘촘하게 잘 짜인 이야기를 보면서 왜 나는 허먼 멜빌의 "모비딕"이 떠올랐을까?


도크에 누워있는 거대한 배가 마치 에이허브선장이 그렇게 잡으려고 했던 거대고래, 모비딕으로 연상되었다. 자신의 다리를 먹어 치운, 거대한 고래. 에이허브에게 모비딕은 무엇이었을까?


불굴의 의지와 도전, 증오와 원한을 불러일으키는 대상이면서 한편으로는 자신을 지탱하는 그 무엇이지 않았을까? 모비딕이 없다면 에이허브도 없다. 에이허브의 위대하고 무모한 도전은 그러므로 모비딕이 있기 때문에 성사될 수 있다. 그 위대하고 위태로운 도전은 결국 자멸로 이어지지만.


배가 넘어간 것은 급하게 지어진 조선소에서 도크의 깊이도 제대로 고려하지 않고 서둘러 선박을 만들어 내다 일어난 사고였다. 회장과 사장의 욕망. 담당 임원과 작업자들의 무능과 불협화음. 거대한 자본의 뒤틀림을 상징하는 구조물이었다.


새로 부임한 대표이사는 에이허브처럼 열정과 용기를 가지고 직원들을 끝까지 몰아붙여서 공장을 정상화하고 심지어 누운 배까지 일으켜 세운다. 하지만 배는 완전히 어 있었다. 새로 온 대표에게 조선소와 배는 자신의 원칙과 철학. 용기와 열정을 쏟아부을 대상이었을지도 모른다. 조선소가 없으면 당연히 대표이사도 없다.


썩어 버린 배는 부패해서 스스로 무너져 버린 천민자본주의를 상징하는 것 같다. 이제 에이허브가 증오하면서도 열렬히 쫓아가던 백경 모비딕은 더 이상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다. 이미 다 썩어 버렸을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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