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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식주의자, 색다른 독해

나만 이렇게 읽히는걸까?

by 조은돌

한강작가의 '채식주의자'는 나에겐 어느 날 문득 섬뜩한 꿈을 꾸고 육식을 버리고 고행과 구도, 깨달음의 길을 걷는 여성 구도자의 이야기로 읽힌다. 여시아문(如是我聞).



현대 한국사회에 여자의 몸으로 태어난 이가 갑자기 불교적 깨달음, 존재의 각성에 이르게 되는 고통스러운 여정을 묘사한 탈속의 이야기라고 할까.


21세기 서울, 여성버전의 '싯다르타'이자, 현대사회의 구조와 질서, 문화와 양식의 틀을 벗어난 사람을 우리가 얼마나 폭력적으로 대하는지에 대한 적나라한 묘사이고 서사이다.



갑자기 육식을 거부하게 된 주인공이 이유를 묻자 꿈 때문이라고 한다. 꿈속에서 고기를 먹는 자신, 질겅질겅 씹히는 그 고기, 자신과 타인이 서로 뭉개지며 하나가 되는 경험을 꿈속에서 겪는다.


이 이야기는 아상비상(我相非相)의 이야기. 나라고 할 게 없고 나라고 집착할 게 없다는 불교적 기론의 뿌리에 닿아 있다.


이 세상이 거대한 하나의 연기론으로 짜인 시물라시옹일지도 모른다는 생각. 색즉시공 공즉시색.


보통사람들이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세상의 평범한 인식체계를 훌쩍 넘어서 버리는 사람들 예를 들면 예수님, 부처님이 오늘날 다시 등장한다면 인류는 그들을 어떻게 대할까? 순순히 선각자와 선지자, 신의 아들로 받아들일 수 있을까?



'채식주의자'에서는 그들이 보내지는 곳은 잘해봐야 정신병원이라고 이야기한다.


그래서 이 이야기는 육식과 폭력, 탐욕을 거부하고 식물이 되는 형태로 초월세계로 나아가고자 하는 메타포로 읽힌다. 아제아제 바라아제. 바라 승아제.



영혜는 "왜... 죽으면 안돼?"라고 이야기하지만 이혼을 당하고 가족들에게 버림받고 정신병원에 감금되면서도 담담하게 고통에 찬 삶을 인내하고 참아내며 때론 거칠게 저항한다. 자신만의 피안의 세계로 넘어가기 위해 발버둥 친다. 어느 면에서는 출가한 부처님의 고행과 수련과정을 닮아 있다.


어쩌면 우린 모두 저마다의 방식으로 피안과 깨달음의 세계로 나아가기 위한 모색과 구도의 여정에 있는지도 모른다.


퍼펙트 데이즈의 도쿄 화장실 청소부 히로야마는 온건하고 단정한 반복을 통해, 채식주의자의 영혜는 보다 고통스럽고 과감한 방법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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