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발은 신선하고 짜릿했다. 외모에 열등감을 가진 회사원 모미의 일상을 현실적으로 묘사할 때 영화는 생동감이 넘쳤다. 못난 얼굴로 인기 없는 회사생활을 꾸역꾸역 꾸려가는 K회사원, 모미. 마스크를 쓰긴 했지만 야한 옷과 볼륨있는 가슴을 무기로 선정적 춤을 추는 밤의 BJ, 마스크걸. 이 둘의 대비가 너무 선명해 오히려 신선했다.
현대사회에서 주목받고 인정받고 싶은 욕망은 누구나 갖고 있다. 미모 즉 매력적인 몸과 얼굴이 즉각적인 관심과 인정을 받을 수 있는 핵심자산이라는 불편하지만 아니라고 부인하기도 어려운 현대사회의 즉물성을 영화에 잘 녹여 넣었다.
출발은 산뜻했고, 신선했다. 신인배우인 이한별 (김모미 役)과 안재홍 (주오남 役), 염혜란 (김경남 役)의 신들린 연기도 초반 드라마의 집중도를 높였다.
"아, 오랜만에 한국적인 클리셰를 넘어서는 뭔가 새로운 작품이 나오나 보다."
하지만, 딱 거기까지였다. 성형을 한 두 번째 모미 (나나 扮)가 나오면서 스토리가 평면적으로 흐르기 시작하더니 감옥에 간 세 번째 모미(고현정 扮)가 나오면서는 끝내 우리 영화의 고질병, K클리셰로 회귀해 버렸다. 두 번째 모미는 우정이, 세 번째 모미는 모성애가 기둥 테마가 되면서 드라마는 신선함을 빠르게 상실해 버렸다.
K-클리셰라고 명명한 한국영화의 심각한 고질병은 스토리에 구겨 넣는 뻔하고 과한 의미부여이다. 잘 나가다가 이런 뻔한 클리셰로 망하는 망작들을 참 쉬지도 않고 내놓는다. 자기희생, 모성애, 사랑하는 사람을 위한 헌신, 대의를 위한 희생, 권선징악. 이런 정서와 주제가 나쁘다는 게, 아니다. 문제는 그런 뻔한 결론을 들이밀면서 관객에게 공감을 강요하는 - 대개 관객은 시큰둥, 배우들만 울고 불고 하는.... -방식이 식상하기 때문이다.
자신을 희생해서 딸을 살리는 모성으로 마무리를 해야 했을까? 웹툰 원작과는 다르게 굳이 모미를 종교에 귀의하고 개과천선한 자기희생적인 엄마로 그려내야 제작자도, 감독도 마음이 편했을까?
현실 세계는 복잡 다난하다. 사람들은 평면적이지 않고 입체적이다. 선한 천사 같은 사람도 악마적인 부분이 있고, 악마적인 사람도 때론 착할 수 있다. 이기적이면서도 때론 이타적이다. 모미는 주변의 인정을 받고 싶은 열망과 욕심을 갖고 있었다. 이런 욕망에서 가면 쓴 BJ를 하고 살았다.
충동적으로 나간 만남에서 살인을 저지르게 되고 성형을 하고 쫓기는 범죄자의 삶을 살아가게 된다. 주변의 인정이라는 작은 욕망을 탐하다가 삶 전체가 일순간 와르르 무너진 이야기다. 현대사회의 누구나 가질 법한 내밀한 욕망이 잘못 삐끗해서 삶 전체의파국을 불러오는 비극적 드라마다.이런 비극적인 드라마를 이따구로 결말을 내도...
K 클리셰를 지독히 싫어하는 이유는 작가와 감독이 너무나 쉽게 안전한 선택을 하는 지적 게으름 때문이다. K 클리셰는 다층적인 세상과 입체적인 등장인물을 편하고 단순하게 재단해서 결론을 내려 버린다. 사람도 세상도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 모미는 선하지도 악하지도 않은 그냥 주변으로부터 인정받고 싶은, 그래서 이뻐지고 싶은 그런 열망을 가진 사람이었다. 그런데 결론부에서 갑자기 자기희생적인 어머니로 탈바꿈시켜 버린다.
외모지상주의가 만들어 낸 현대사회의 비극을 블랙유머의 방식으로 풀어 가다가 느닷없이 모성애를 끌고 와서 어머니의 자식에 대한 희생으로 마무리해 버렸다. 어이가 벙벙해지는 이 연결고리가 나만, 납득이 안 되는 건지....
그래도 등장하는 배우들의 열연과 호연에는 아낌없는 박수를 보내고 싶다. 연기로만 보면 K콘텐츠가 한 단계 업그레이드된 느낌이 확실히 오는 드라마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