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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송정 May 17. 2022

엄마의 최애메뉴 비빔냉면, 이젠 딸이 만들어 드릴게요

엄마가 좋아하는 비빔냉면, 맛있게 만드는 비법은 식초!

엄마는 비빔냉면을 참 좋아한다. 양념갈비를 먹으러 가면 다들 물냉면을 시켜 짭조름한 갈비랑 돌돌 말아먹어도, 엄마는 "나는 비빔" 하시니 말 다했다.


그뿐만이 아니다. 코로나19가 오기 전에는 어쩌다 혼자서도 식당에 가서 드시고 올 정도니, 말하자면 엄마는 비빔냉면 마니아라고 해도 될 정도다.

그런 엄마가 바깥에 나가는 일이 거의 없었던 몇 년 동안 다른 음식은 별로 생각나지 않는데 비빔냉면은 한 번씩 먹고 싶다고 하셨다.

그렇다면 딸이 만들어 드리겠습니다!  "엄마는 보조역할만 해 주세요!"라며 큰소리치고 냉면 만들기에 들어갔다.

사실 나는 물냉면 파라 비빔냉면을 만들어 먹은 적이 거의 없어 살짝 걱정이 되긴 했다. 아니다 다를까 처음 만든 비빔냉면은 솔직히 내 입에도 그저 그랬다.

그래도 엄마는 딸이 만든거라고 잘 드셨다. '음, 엄마가 좋아하는 음식인데, 이왕이면 맛있게 만들어 드리고 싶은데...' 생각하며 만들던 어느 날, 깜빡 실수로 식초를 확 들이붓게 되었다.


그런데 어라? 사 먹는 맛과 비슷했다. '뭐야, 뭐야 드디어 방법을 찾은 거야?' 좋아서  입꼬리가 올라갔다.





비법은 엄마표 고추장에 좀 많다 싶은 식초
 
또다시 엄마가 비빔냉면 생각이 날 것 같던 어느 날, 새로 찾은 그 방법을 시도하기로 마음먹고 요리에 들어갔다.

가장 먼저 하는 일은 면을 삶는 것. 전기포트에 물이 끓으면 냄비에 붓고 건조된 면을 손가락으로 동그랗게 쥐어 부채처럼 펼친 다음 휘휘 젓는다.

포장지에는 '4분 동안 끓이세요'라고 친절하게 적혀 있지만 엄마는 "뭘 시계까지 맞추노, 찬물 부어가며 끓이다가 하나 건져 먹어보면 되지" 하신다. 역시! 엄마한테는 타이머 따위 필요 없다.

그렇게 부르르 끓어오르길 3차례, 엄마가 "됐다" 하면 기다렸다는 듯이 차가운 물을 틀고 면을 비벼 씻은 뒤 물기를 탈탈 털어 한쪽에 두는 것은 내 몫.
 
이제 양념장을 만들자. 큰 볼에 엄마가 직접 만들어 짜지 않은 고추장 한 숟가락 반. 간장은 살짝 넣어 간만 맞춘다.


그다음, 비법이라고 말하기도 뭣한 비법, 식초는 역시 좀 많다 싶게 붓고 꿀을 넣어 신맛을 적절하게 조절한다.
 
그다음엔 마늘과 파. 어느 요리 블로거는 생마늘을 다져 넣으면 더 맛있다지만 우리 집은 얼린 마늘뿐이다.


그렇지만 아직 색이 하얗기 때문에 바로 다져 넣는 것과 맛은 비슷할 거로 생각하며 툭 잘라 한 숟가락.

여기에 잘라 둔 파를 반으로 쓱 갈라 속이 드러나는 부분을 위로 향하게 놓고 다지듯이 잘게 썬다.


나이가 들수록 파가 들어가야 음식 맛이 확 살아난다는 엄마 말에 격하게 공감하며, 듬뿍 넣는다.
 
모두 섞는다. 식초를 많이 넣고, 설탕이 아닌 꿀이 들어가고, 간장까지 더 해져 양념장이 흥건하다.


파까지 들어가면 물이 더 나겠지. 미나리를 올리면 다 먹고 난 뒤 빨간 국물이 남아돌 것 같은데, 어쩌지?



어느새 딸은 엄마를 닮아가고

엄마는 양념장 국물이 남는 건 아까워서 못 버린다. 예전엔 남은 국물을 먹는 엄마를 보며 나는 못 먹겠다고 버린 적도 있지만, 이젠 아니다. 나이가 들어갈수록 나도 엄마와 똑같다.

"엄마, 양념에 국물이 흥건한데?"

"면이 양념 국물을 다 빨아들이게 물을 많이 빼라"

"옛썰"

이쯤 되면 보조는, 나다.


면을 담아 둔 채반을 위아래로 뒤집어 물을 최대한 뺀다. 씻어 놓은 미나리는 채소 탈수기에 넣고 서너 바퀴 돌려 먹기 좋게 썰어둔다.
 
이제 불 위에 고기를 올려 지글지글 굽는다. 거의 다 되어간다는 신호!


그런데 아뿔싸, 면에 물을 너무 많이 뺐나? 퍼진 것 같이 한 뭉치가 되어 살짝 불안하다.

얼른 양념장에 넣고 젓가락을 양손에 하나씩 쥔 다음 짜장면 비비듯 가운데를 벌리고 다시 안쪽으로 모으는 동작을 반복한다.

흥건한 양념장이 덩어리 진 면 사이로 스며들어 국물은 점점 사라지고 파들만 바닥에 보인다.


역시 엄마 말을 들으면 자다가도 떡이 생긴다. 보조는 미나리를 슬쩍슬쩍 비비며 고개를 끄덕인다.
 
고기가 다 익자 속도가 빨라진다. 미나리를 젖혀 면 위에 참기름을 한 바퀴 두른다.


엄마 단골 가게에서 직접 짜오는 참기름은 3대 진미 트뤼플 오일이 부럽지 않은 향이다.

마지막으로 막 갈아 놓깨소금을 뿌리고, 기름기를 닦아가며 노릇하게 구운 목살과 함께 상에 낸다.

초록 미나리와 빨갛고 쫄깃한 냉면이 노릇한 목살을 붙안고 입안으로 들어온다. 아삭아삭, 새콤달콤, 고소하다.


엄마는 입가에 양념이 묻는 것도 모르고 "맛있네, 내 입에 딱 맞다" 하신다. 맨날 저렇게 부드럽고 듣기 좋게 말해 주면 좋겠지만 그렇지 않은 날이 더 많아 요즘 들어 자주 다투게 된다.


"엄마, 평소에도 그렇게 부드럽게 말해주면 안 되겠슈?"


여전히 당신의 말이 자식에게 영향력 있음에 속으론 안도의 한숨을 내쉴지, 아니면 '그런 말쯤이야 하며 웃어넘기면 되지, 아이고.' 할지 알 수 없지만, 나는 여전히 이 부분에서만큼은 어린아이임을 인정해야겠다.

                                       




집에서 만드는 비빔냉면 레시피



재료 : 고추장, 간장, 식초, 꿀, 마늘, 대파, 참기름, 깨소금, 냉면 면, 목살구이 조금(단백질 섭취를 위해)



1. 먼저 면을 삶은 뒤 찬물에 비벼 씻고 체에 밭쳐 물기를 (많이) 뺀다.


2. 스테인리스 볼에 고추장, 간장, 마늘, 식초(좀 많다싶게)와 꿀, 참기름을 넣고 저어준다.


3. 대파는 다지듯이 썰어 양념장에 넣는다.


4. 씻은 미나리는 채소 탈수기로 물을 뺀 뒤 먹기 좋은 크기로 썰어둔다.


5. (물을 많이 뺀) 면을 양념장에 넣고 짜장면 비비듯이 섞고 미나리를 넣어 무친다.


6. 참기름 살짝, 깨소금을 뿌리고 구운 목살과 함께 상에 낸다.


* 이 글은 오마이뉴스 편집기자님이 편집해 주신 글을 제가 다시 퇴고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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