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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송정 Jun 09. 2022

나이 드신 엄마를 위한 카레에는요...

강황 가루는 넣고, 익힌 당근은 빼는 우리 집만의 카레 레시피




집안이 조용하다. 엄마와 다퉈서 서로 대화를 안 해서다. 아침엔 어제 남은 반찬을 대충 꺼내 먹었지만, 계속 그럴 수는 없다. 지금 내 마음이 말린 대추처럼 쪼글쪼글하다고 해도. 뭘 해 먹을까? 집에 있는 재료들을 떠올리다가 지난주에 햇감자가 좋아 보인다며, 사가서 카레를 만들어 먹자던 엄마의 말이 떠올랐다.




포슬포슬한 햇감자로 만드는 노오란 카레


카레 만들 준비를 하기 위해 재료들을 모두 꺼내 씻고 다듬고 칼로 썬다. 엄마는 내가 카레를 하려고 준비하도 모른다. 아직은 엄마한테 "카레 만들까?" 라는 말을 먼저 하고 싶지 않아서다. 그러니 혼자서 부지런히 만든다.



카레를 만들 때 우리 집만의 특별한 점은, 큰 통으로 사다 놓은 샛노란 강황 가루는 추가하고, 제주에서 왔다는 귤색 당근은 넣지 않는 것. 채소는 물로만 익히고 고기도 넣지 않고. 마지막으로 캔 옥수수가 있으면 꼭 챙겨 넣는 정도다.


강황 가루는 치매 예방에 좋다고 TV에 자주 나와 벌써 사뒀지만, 특유의 향 때문에 손이 가지 않으니 카레를 만들 때 잊지 않고 넣어야 한다.


당근을 빼는 것은 엄마 나이가 돼야 알게 될, 요즘 들어 엄마를 불편하게 하는 바로 그것, 변비 때문이다. 아무래도 나이 때문에 장 활동이 원활하지 않으니 어쩔 수 없다.


그러고 보니 예전 변비약 광고는 20~30대 여성들이 주로 했던 것 같은데, 요즘은 <뜨거운 싱어즈>의 김영옥 할머니와 '니들이 게 맛을 아냐?'던 신구 할아버지가 같이 나오는 이유가 있구나 싶다.


부지런한 엄마는 아침마다 몇 가지 채소를 갈아먹는데도 화장실 가는 것이 생각보다 편하지는 않단다. 그래서 '익힌' 당근은 변비가 생길 수 있다는 의사의 말이 생각나 카레에서 뺀다.


또 하나, 우리 집은 나 어릴 적부터 카레를 만들 땐 오로지 채소를 물로만 익혔다. 다른 집은 노란 카레와 어울리는 당근, 살짝 데친 브로콜리, 감자, 양파 등을 돼지고기와 함께 기름에 볶은 다음 물을 붓고 익히던데, 엄마는 그러지 않았다.


엄마는 기름기가 많은 음식을 좋아하지 않는다. 고기가 들어가서 기름이 뜨는 게 싫어서 채소만 들어간 카레를 항상 먹었다. 나이가 들어 밖에서 카레라이스를 먹어 보니 돼지고기나 닭고기가 들어 있어서 이렇게도 먹는구나 했다.


또 엄마는 다른 음식은 나보다 더 간간하게 드시는데 카레는 묽고 싱거운 게 좋다고 해서 그렇게 만든다. 여기에 옥수수 알갱이가 톡톡 터지는 식감이 좋다고 꼭 넣자고 하시니 캔 옥수수가 있으면 마지막에 챙겨 넣는다.



음식이 맛있다고 느끼는 건 단맛과 짠맛이 적절할 때. 노란색 포장지에 든 카레는 짠맛이 강하니까 겨울엔 무조건 고구마를 넣지만, 지금은 역시 햇감자를 넣는다. 대신 양파를 듬뿍 넣고 달콤한 캔 옥수수 알갱이도 넣어주면 단짠(달고 짠 맛)이 돼서 맛있다.



김치냉장고에서 잘 익어 먹기 딱 좋은, 얼갈이 열무김치를 낸다. 엄마가 맛있다고 자주 사는 마른 아귀포는 뜨거운 김에 찐 뒤 파와 간장을 조금 넣고 훌훌 섞는다.


마지막으로 단백질 섭취를 위해 달걀프라이를 굽는다. 반숙으로 익은 노른자를 톡 터뜨려 밥과 함께 비빈 다음 얼갈이 열무김치를 숟가락에 올려 한입에 먹으면, '그래, 이 맛이야!'가 하게 된다.





끼니를 같이하는 소중한 사람, 식구(食口)


음식을 만들고 있으니 엄마가 힐끔 보고 간다. 가족이 아니라면 상대방이 뭘 하든 관심도 보이지 않을 텐데. 어색한 자리를 피하려고 '배가 안 고파서' 또는 '약속이 있어서'라며 더 이상 권하지도 못하게 말을 막을 텐데.


하지만 식구는 그렇지 않다. 내가 밥을 차리면 엄마는 말없이 수저를 놓고 언제나 그랬듯 각자 자리에 앉아 같이 먹기 시작한다. 설거지하려고 튼 수돗물이 느닷없이 튀어 "앗" 하는 소리가 나면, 달려와 걸레로 흘린 물을 닦아주고 옆에서 뒷정리를 도와준다.


언젠가 TV에서 아이들이 부르는 동요 가사를 본 적이 있다.



"엄마는 소중해. 그러니까 우리가 지켜야 해."



돌아가시고 나면 엄마의 소중함을 절실히 느끼겠지만 매일 보는 지금, 그냥 같이 사는거라는 생각은 늘 해도 엄마가 소중하다는 생각을 해 본 적이 없다. 그러니까 지켜드려야 한다는 생각도 당연히 해본 적이 없지.


아침에 엄마가 일어날 시간이 지났는데 기척이 없으면 순간 긴장하지만, 그 순간이 지나면 늘 함께 계실 거라고 또 착각한다. 옆에 있는 동안, 소중하게 잘 지켜야 하는데 그걸 자꾸 잊어버린다.


부모 나이 여든이 넘으면 다른 게 효도가 아니라 하고 싶는것을 해 드리는 게 효도라는데.


부모 나이 여든이 넘으면 다른 게 효도가 아니라 하고 싶는것을 해 드리는 게 효도라는데.


말린 대추같이 쪼글쪼글한 내 마음을, 다시 펴야겠다.







나이 드신 엄마를 위한 카레 레시피



재료 : 햇감자 큰 거 2개, 양파 큰 거 반개, 캔 옥수수 반 통, 카레 가루 4숟가락, 강황 가루 1숟가락, 물 적당량(채소 데칠 때 + 카레 풀어놓을 때 필요한 양), 달걀 2개



1. 햇감자는 포슬포슬한 맛을 느낄 수 있게 큼직하게 썰고 양파는 깍둑썰기한다.


2. 캔 옥수수의 국물은 버리고 물로 씻은 뒤 채반에 받쳐 둔다.


3. 카레 가루 4숟가락에 강황 가루 1숟가락을 물에 미리 풀어놓는다. (요즘 카레는 잘 풀려서 바로 넣어도 된다는데, 습관이다)


4. 당근을 빼는 대신 다른 재료를 추가해도 좋다. 이왕이면 익었을 때 단맛이 나는 것이 더 좋다.


5. 냄비에 준비해 둔 채소를 넣고 물을 붓고 익힌다.


6. 채소가 다 익으면 미리 풀어둔 카레를 넣고 계속 저어준다.


7. 카레가 끓기 시작하면 옥수수를 넣고 저어가며 기포가 올라올 때까지 끓인다.


8. 노른자를 반숙으로 익힌 달걀 프라이를 카레 위에 올리고 김치와 밑반찬을 함께 낸다.


* 이 글은 오마이뉴스 편집기자님이 편집해 주신 글을 제가 다시 퇴고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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