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장에서 이것, 찾기 힘들어요
시금치 실종으로 더욱 체감하는 고물가 시대, 해결책은 정녕 없는 건가요?
며칠 전 마트에 갔을 때의 일이다. 상추가 100그램 조금 넘을까 싶은데 가격표를 보고 놀란 내가 엄마를 다급히 불렀다.
"엄마, 이것 봐봐. 상추가 요게 4000원이 넘는다."
저쪽에서 다른 채소를 보고 있던 엄마가 내가 부르는 소리에 잰걸음으로 다가왔다.
"아이고 세상에. 근데 파 있나? 팟 값도 많이 올랐는데, 거기 나온 거 있나?"
"아니, 가판대에 나온 건 요게(상추, 청양고추, 치커리) 다네. 요즘엔 채솟값이 비싸서 그런지 이게 할인한다고 나온 채소 가격이 맞나 싶다."
추석 상에서 보기 힘들 것 같은 시금치나물
그런데 요즘 가격이 가장 절정인 채소는 당연코, 시금치다. 추석 상에 올라가는 삼색나물 가운데 하나인 시금치. 우리 집은 오랫동안 지내던 기제사를 문중에 넘겨 더 이상 차례상은 준비하지 않지만, 차례상에 나물을 올려야 하는 집에서는 주춤할 수밖에 없는 가격이다.
시금치의 금이 '金' 자는 아닐까 싶게, 너무 비싸서인지 시장에서도 잘 보이지 않았다. 그 넓은 농산물 시장을 다 돌아다녀도 어쩌다 한 집에서 보이는 정도. 그마저도 가격부터 확인하니 400그램 정도 될까, 아니 그보다 조금 더 많을까 싶은데 '만 원'이라고 적혀 있었다.
차례상을 차리지 않는 우리 집도 명절에는 나물 몇 가지로 비빔밥을 해서 탕국과 함께 먹는데, 이번 추석에는 시금치나물을 대신할 다른 식재료로 뭘 할까 생각해야 했다. '그래, 미역을 볶아야겠네.' 부산에서는 미역을 볶아서 비빔밥에 넣어 먹으니 아쉬운 대로 그렇게 해야겠다며 발걸음을 옮겼다.
뉴스를 보니 8월 소비자 물가상승률이 7개월 만에 주춤한다며 물가 상승세가 점차 완화되지 않겠냐는 조심스러운 전망이 나온다고 한다. 그러나 '조심스럽다'는 말처럼, 현실에서는 와닿지 않는 뉴스다.
추석이 코 앞인데도 '역시 추석이라고 물량을 많이 풀었나? 가격이 좀 내려갔네'를 느낄 수가 없다. 시장이나 마트를 가 보니 이미 오를 대로 오른 물가가 추석을 앞두고 더 올랐으면 올랐지 떨어져 있진 않았다.
10원 받으려고 이렇게까지... 따라 하면서도 '씁쓸'
요즘 MZ세대들 사이에서는 '무지출 챌린지'가 유행이다. 인터넷에서 '무지출 챌린지'를 검색하면 MZ세대들이 앞다퉈 더 좋은 아이디어를 올려놓은 것을 볼 수 있다.
코로나19로 배달 음식을 많이 시켜 먹던 것도 무지출 챌린지를 시작하면서 점차 줄이는 추세다. 그런데 앞으로는 배달비에 이어 포장비(업계에서는 포장 중개 수수료라고 하는)까지 받는다는 얘기가 나온다. 한 커뮤니티 댓글에선, 배달앱을 삭제하는 것을 넘어 아예 '배달앱을 집 주변 새로 생긴 맛집을 찾는 맛집 지도로 봐야겠다'는 우스갯소리까지 봤다.
'어휴, 이렇게 고물가 상황이 계속된다면 우리 세대도 MZ세대들이 하는 방식을 배워 무지출 챌린지를 해야 하지 않을까?'
사실 나도 얼마 전 친구들을 만나 이야기하다가 MZ세대들이 무지출 챌린지를 위해 필수로 깐다는 '걸어서 포인트를 모으는 앱'을 깔았다. 그리고 앱을 자주 들락날락하며 그들처럼 10원, 20원에 해당하는 포인트를 모았다.
그러고 보니 나도 하고 있는 게 있기는 했다. 대표적인 것이 저녁을 먹고 나서 엄마와 함께 산책 겸 집 앞 마트를 가는 것이다. 마감 세일을 노리면서. 하지만 그것도 매일은 안 된다. 살 것도 딱히 없는데 구경삼아 갔다가 견물생심이라고 꼭 물건 하나를 들고 집으로 오게 되기 때문이다.
여태까지는 타임 세일만 노리며 갔는데 이제는 할 일이 하나 더 생겼다. 마트에 도착하면 앱을 켜고 "00원을 받으세요"라는 버튼을 누르는 것이다. 또 들은 대로 하루 한 번 앱에 들어가 출석 버튼도 누른다. 집 근처에 걸어서 도착하면 포인트를 주는 곳도 파악해 놓고 볼일 보러 가면서 일부러 들러 포인트를 받기도 한다.
그런데 며칠 동안 열심히 포인트를 모으다 보니 뭔가 모르게 씁쓸함이 느껴졌다. 지출하지 않겠다, 줄일 수 있는 데까지 줄여보겠다고 다들 열심히지만 이것만으로는 한계가 있으니까 말이다.
소셜미디어에 올라오는 MZ세대들의 '무지출 챌린지 이렇게까지 한다'를 보면서 처음에는 '와, 대단하네. 저렇게도 하는구나!' 감탄하며 나도 따라 했지만 계속하다 보니 '국민이 참 고생이 많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가를 잡기 위해 노력하겠다는 기사는 여기저기서 보이는데 막상 체감하는 물가 하락은 없다. 어쩌다가 이제는 길에서 보여도 잘 줍지도 않는 10원이라도 (포인트로) 모으겠다고 이러는 건지. 어떻게 이렇게 국민이 각자, 알아서, 어떻게든 이 상황을 헤쳐 나가는 것이 트렌드(어떤 현상에서 나타나는 일정한 흐름)가 된 건지...
"파를 어제 거기서 사 올 걸 그랬나? 요는(여기는) 대가 너무 얇은데. 어제 거기는 5000원 가까이했어도 대가 굵었는데..."
엄마가 늘 파를 사던 마트에서 팟 값이 평소보다 비싸 다른 곳을 더 보자며 그냥 온 게 아쉬운 듯 말씀하셨다.
파는 음식을 만드는데 기본으로 들어가니 비싸도 사는 수밖에 없다. 더더욱 추석을 앞두고 있으니 어쩔 수가 없다. 추석 때 식구들이 모여서 음식을 맛있게 먹으려면. 이런 생각을 하는데 띠링 소리가 났다. 휴대전화 상단에 'OO 하면 포인트가...'라는 말이 보였다가 사라진다.
'어휴, 이거라도 모아야지, 뭐.'
* 이 글은 오마이뉴스 편집기자님이 편집해 주신 글을 제가 다시 퇴고한 글입니다.